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평범하지 못함

이것은 건강한 인생 거래의 주체로서 지녀야 할 회색 정체성이 결여되었다는 뜻입니다.·······회색 정체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넓고 좁음 사이, 높고 낮음 사이, 부드럽고 뻣뻣함 사이, 받아들임과 내침 사이, 거둠과 버림 사이에 유장한 균형, 어른다운 절제, 아름다운 화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순의 대립적 불연속만 있을 뿐 공존적 연속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격과 역량이 두 극단 사이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0쪽)


거의 10년 다 돼가는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오릅니다. 어떤 방송작가와 우울증 때문에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하여 누구보다 예민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병명만을 말하고 약 처방을 해줄 뿐 어떤 양의사도 그가 지닌 우울증의 기전과 특성을 명확히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남다른 감수성은 이 점을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리저리 길을 찾다가 웬 변방 한의사가 우울증 상담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작가답게 실팍한 묘사들을 통해 살아온 이야기와 마음의 풍경들을 이야기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 경청했습니다. 이야기를 일단 매듭지으며 그는 맑은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눈에 대고 딱 한 마디 했습니다.


“평범하지 못함!”


제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중심시각을 확 풀어버렸습니다. 극히 기민하게 내면으로 잠겨들었습니다. 다음 순간 그는 손뼉을 딱! 하고 쳤습니다.


“정확하시네요!”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왜 양의사들이 그 동안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사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입니다. 서양의학에는 이런 어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의학 너머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 그러니까 비범하다는 것과 다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을 전제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양극단의 기계적 교차가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동적 중도中道가 끊임없이 흐르는 상태입니다. 중도의 역동성은 화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화쟁은 곡진한 소통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곡진한 소통은 평등을 전제합니다. 평등은 평범함에 터합니다. 평범함은 죽어도 지켜야 하는 무엇, 죽어도 버려야 하는 무엇을 지니지 않기에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입니다.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는 다름 아닌 무상無常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울증에 침륜되면 흐물흐물한 마비 상태에 처합니다.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일 수 있는데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초적 양극단이 그 사이에 깊은 슬픔과 절망의 심연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오가지 못합니다. 괴괴합니다. 변화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오직 극단은 각각의 극단에서 칼을 물고 대치할 따름입니다.


우울증의 이런 내밀한 진실을 가리고 싶은 서양의학은 화학합성약물을 들이밉니다. 같은 원리가 작동됩니다. 세월호사건의 정치적 진실을 감추고 싶은 매판독재분단고착세력은 보상금을 들이밉니다. 이른바 위안부 문제 타결로 식민지 본질을 위장하고 싶은 매판독재분단고착세력도 보상금을 들이밉니다. 똑같은 협잡입니다.


정답이 없지 않습니다. 분명코 있습니다. 오직 하나.


“평범함에 깃들라!”


우울증, 지나갑니다. 권력, 지나갑니다. 돈, 지나갑니다.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흐름에 맡겨야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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