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다.(342쪽)


이른바 잘나가는 한의사 후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게 물었습니다.


“형님, 재미있으세요?”


저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재미있지.”


그 또한 주저 없이 제 대답에 응했습니다.


“저는 재미없습니다.”


그가 재미없는 까닭은 그의 진료에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재미있는 까닭은 제 진료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병을 상담과 숙담熟談으로 치유하고, 더 나아가 실생활의 난제를 숙론熟論으로 풀어냄으로써 환우와 함께 삶의 서사를 써가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사회의 베스트셀러 등 뒤에서 벌어지는 통속한 음모가 이 이야기에 들어설 여지란 근본적으로 없는 것입니다. 오직 나눈 사람 각자의 삶에서 소리 소문 없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아갈 뿐입니다.


제 진료 이야기가 그러하듯 제 인생 이야기도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생 이야기가 베스트셀러로 되려면 승리나 기획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제 인생은 상처와 유기遺棄로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신음소리, 치유의 웅얼거림이 뒤엉킨 이야기가 조증 숭배하는 ‘투명사회’에서 왁자하게 소비될 리 없습니다. 아픈 사람, 버려진 사람만이 소리 소문 없이 정독하고 재독할 뿐입니다.


아픈 사람, 버려진 사람이 제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제가 아픈 사람, 버려진 사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또는 포개지고 또는 쪼개지며 서로의 이야기들은 엮이고 기억됩니다.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즉시 사라지는 운명, 그 베스트셀러의 천형은 우리가 짊어질 바 아닙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고 내버리는 삿된 힘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줄기차게 번져갈 것입니다.


60년을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던 나날, 그 이야기로 살았습니다. 오늘 남은 날들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재미있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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