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질병은 언제나 돌봄을 받는 것이거나 최소한 돌봄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아픔을 가하도록 인간에 의해 의도된 고통과 질병을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몸-자아는 모든 고통들 속에서 파괴된다. 고통이 의식에서 그 자신을 고립시키고 의식의 나머지를 흡수하는 통증이라면, 진정한 차이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고통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차이는 주목을 받아 울 수 있는 고통과 그 자신의 쓸모없음 속에 남겨지는 고통 사이에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주장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분명히 여러 고통들 중에서 질병은 훨씬 자주 응답을 받는 고통이다. 강제수용소에서 들리는 울음은 억압된다.(333-334쪽)



지금 세월호 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매판독재 권력과 막장 언론은 유족의 고통을 “자신의 쓸모없음 속에 남겨지는 고통”으로 남기기 위해, “주목을 받아 울 수 있는 고통”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날조하고 위증하고 왜곡하고 침묵합니다. 적어도 유족에게 대한민국은 “강제수용소”입니다. 그들의 “울음은 억압된” 흐느낌입니다. 생때같은 새끼들이 살해되는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던 유족에게 또 다시 대한민국은 “의도된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의도된 고통을 국민에게 주는 대한민국이 어찌 국가이겠습니까. 국가가 아닌 사적권력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요구하겠습니까. 유족의 고통이 “응답을 받는 고통”이게 하려면 감응하는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그 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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