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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서사의 윤리가 독특한 활동이 되는 것은 임상 의료의 조우를 넘어서는 영역·······환자됨patienthood 바깥에 있는·······아픈 동안에 어떻게 좋은 삶을 사는가 (하는 문제에서-인용자 덧붙임-)다.·······
·······전문가-환자 관계가 두 인격체의 관계로 될 때, 의료는 또 다른 측면을 갖는다.
·······“제게 필요한 용기를 주실 수 있나요?” 이 질문은 의학적 정보나 치료에 대한 요청이 아니다.·······의학적 전문지식은 최소한만 관련된다.·······한 인간으로서 다른 한 인간-인간으로서의 그가 인간으로서의 그녀로 번역된 것을 인용자가 바꿈-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296-297쪽)
드라마에서 연기만 하다가 각종 토크쇼나 예능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거기에 출연하면서부터 TV 탤런트들은 드라마 밖에서도 ‘탤런트’적 얼굴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중견급 이상 연기자들에게 어느 날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붙여졌습니다. 후배 탤런트, 방송인들의 선생님을 넘어 그들은 이제 사회 전체의 어른이나 멘토적 위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요리 전문가에게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주방장에서 셰프로, 셰프에서 선생님으로 호칭이 바뀌면서 요리 전문가가 사회의 어른이나 멘토적 위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탤런트가 그러하듯 요리사도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개적 프로그램에 나와 반말을 서슴없이 하는 높으신 분이 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분야의 누구든 걸맞은 지식과 덕망을 갖추면 선생님 소리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사회가 그런 이치와 전혀 다른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를 경전 삼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만 선생님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정작 선생님 노릇을 결곡히 하여 선생님 대접을 제대로 받아야 할 사람들은 한낱 자본의 주구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다름 아닌 의사, 아니 의자醫者 집단입니다.
사회가 분화되기 이전 고대사회에서는 정치적 지도, 영적 인도, 그리고 치료적 계도는 통합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공동체 유지·발전에 필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 일들에는 가르쳐 이끄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양 전통에서 의사를 가리키는 doctor는 docere, 즉 ‘가르치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의사는 선생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지금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습적 호칭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사를 누가 어른으로 멘토로 존경한단 말입니까. 의사에게 누가 “임상 의료의 조우를 넘어서는 영역·······환자됨patienthood 바깥에 있는” 일을 묻겠습니까. 의사에게 누가 “아픈 동안에 어떻게 좋은 삶을 사는가,” 묻겠습니까. 의사에게 누가 “한 인간으로서 다른 한 인간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겠습니까. 특히나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입니다.
어제 수능 성적이 발표되었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대에 있는 이른바 극상위권 소수 아이들이 의대에 진학할 것입니다. 의대 6년 동안 공부하고 이어 전문의 과정을 통과해 전문의가 되면 중산층 이상의 삶이 보장됩니다. 의대 진학 이전에 그랬듯 진학 이후에도 이들을 인문적, 사회적 감수성으로 이끄는 교육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문적, 사회적 감수성이 없는 의사에게 “전문가-환자 관계가 두 인격체의 관계로 될” 기회는 없습니다. 두 인격체의 관계로 서지 못하는 의사에게 환자가 “제게 필요한 용기를 주실 수 있나요?” 라고 물을 기회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전문지식 장사만으로 그 삶의 영역을 국한시켜야만 합니다. 인문과 사회 분야에 대해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없습니다. 선생님 아닌 선생님으로, 그저 형해로 살아갈 뿐입니다.
이제라도 서둘러 의대는 의대생에게 인문적, 사회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전문 지식에 걸맞은 인간적 소양과 기품을 지닐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성장한 의사만이 아픈 동안에도 어떻게 좋은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픈 사람들과 함께 깊이 논의할熟論 수 있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현실이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이 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