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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궁극적으로, 도덕적 가치는 권력의 불평등에 주목하는 정치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도덕적인 방향의 재정립이 없는 정치적 변화는 관료주의를 더하기만 한다.(290쪽)
도덕은 인간의 문제입니다. 정치는 인생의 문제입니다.
도덕은 내면에 주의합니다. 정치는 외형에 주의합니다.
도덕은 인문 지평을 세웁니다. 정치는 사회 맥락을 조정합니다.
도덕은 숭고를 증폭시킵니다. 정치는 비장悲壯을 감축시킵니다.
도덕의 규범은 ‘차마’입니다. 정치의 규범은 ‘감히’입니다.
도덕은 정치의 최대한입니다. 정치는 도덕의 최소한입니다.
도덕은 정치의 원천입니다. 정치는 도덕의 사해四海입니다.
마음병을 앓는 사람들과 상담하면서 의자醫者로서 흔히 마주하는 한계는 일반적으로 그 아픈 사람의 삶의 조건 자체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옵니다. 병의 원인을 제공한 가족, 특히 어머니나 배우자 바뀌지 않는 한, 아픈 사람 홀로 마음 바뀌어서 될 문제가 아님은 너무나도 분명한데, 의자가 할 수 있는 일이 현실적으로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족 문제가 이러할진대, 원인 제공을 사회, 국가가 했다면 더더구나 속수무책이 됩니다.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절망할 때면 체 게바라가 총을 든 까닭에 대해 생각합니다.
정치적 치유가 불가피한 만큼 정치 또한 부질없는 장난이기도 합니다. 우주의 기운으로 혼을 다스리는 영검한 통치자가 나와 창조와 개혁을 주도하는데도 사람은 떼로 죽어나가고 삶은 피폐해지고 있는 대한민국이니 말입니다.
“도덕적인 방향의 재정립이 없는 정치적 변화는 관료주의를 더하기만 한다.”
아, 참으로 적중하는 말입니다. 인간적 돌이킴이 전무한 채, 인생의 성공만을 구가해온 한 줌 집단이 어린아이 밥알 흘리듯 벌이는 토건정치의 무쌍한 변화는 오로지 기득권자들의 독선적, 형식적, 획일적, 억압적, 비민주적인 행동 양식이나 사고방식만을 강화할 따름입니다. 인간 아닌 주체가 행하는 정치 놀음이 인간을 말살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설마 이따위를 보고 도덕적 가치더러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라 말한 것은 아닐 테지요. 도덕적 가치와 상호보완적이어야 하는 것일 때의 정치는 “권력의 불평등에 주목하는 정치”여야 합니다. 지금 정치는 정반대입니다. 우리의 도덕적 가치와 상호보완적이려면 지금 정치는 파현의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파현이 치유입니다. 그 과정에서 도덕의 정신은 온전히 대승이 될 것입니다.
마음 아픈 사람들에게 입쟁立諍, 그러니까 싸움의 이치와 자세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도덕적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도. 권력의 불평등에 주목하는 정치를 세우기 위해서도. 나사렛 청년 예수가 이 말을 한 까닭에 대해 생각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태복음 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