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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몸의 취약함과 통증이 전경에서 지속될 때, 새로운 사회윤리가 요구된다.
당면한 과제는 이 윤리를 다성적인 언어로 서술하는 것이다. 다성적 윤리는 상대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차이를 인정할 것을 제안한다. 즉, 이는 합의에 도달하는 데 다중적 목소리들을 인정하고 각각에게 온전한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280쪽)
지난 26일 대한불교 조계종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동참자 일동은 국사교과서 획일화 강행으로 야기된 시국 현안과 관련해 정부와 국회에 “아픈 국민들이 자신의 삶터에서 묵묵히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여론을 듣고 해법을 모색해”달라 요청하고, “정부와 정치의 존재이유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달라 일침을 가했습니다.
마치 아서 프랭크가 오늘 여기서 한 것처럼 두 말의 내용적 평행이 절묘합니다. 그는 아픔이 사회적 “전경”으로 나설 때 “다중적 목소리들을 인정하고 각각에게 온전한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새로운 사회윤리”, 곧 “다성적 윤리”라 합니다. 불교계는 지금 우리 국민 모두가 아프다고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국민을 아프게 하는 정부와 정치에게 다양한 여론을 듣고 해법을 모색하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부와 정치의 존재이유라 합니다. 요컨대 이는 국사 해석에 대한 다중적인 목소리를 인정하고 각각에게 온전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다성적 학문·교육 윤리의 요구입니다.
정치란 ‘공동체 구성원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다양한 갈등관계를 조정하여 그 공동체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국사교과서 획일화 정국의 대한민국현실에서는 정반대로 정의됩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간다운 삶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첨예한 갈등관계를 조장하여 통치자의 정념과 목적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통치자의 정념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다중적 목소리들을 인정하고 각각에게 온전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 ‘올바르다’는 올가미로 그 다중적 목소리를 내는 목을 ‘비정상의 혼’이라며 옭아매고 있습니다. 이것은 낡은 윤리입니다. 이것은 단성적 윤리입니다. 아니! 윤리가 아닙니다. 병리입니다. 치료가 필요합니다. 의학의 정치학이 절실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의학의 정치학은 병리란 치우침임을 직시합니다. 치우친다는 것은 한쪽으로 쏠린다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쏠린다는 것은 그 쏠림으로 말미암아 어느 한쪽의 생명력이 훼손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의 생명력이 훼손되면 종당 전체 생명력이 훼손되고 맙니다. 전체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균형을 되찾는 것이 치료입니다. 균형을 되찾는 것이 다름 아닌 다중적 목소리를 인정하고 각각에게 온전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매판독재분단세력 쪽으로 너무나, 아니 절대적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힘도 돈도 정보도 모조리 그쪽으로 엎어져 있습니다. 그들만 옳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국민으로 인정 되지도 않습니다. 정녕 대한민국의 국민이고자 한다면, 국민의 위치를 되찾고자 한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회윤리를 세워야 합니다. 모두 일어나 각각 온전한 정당성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당면한 과제는 이 윤리를 다성적인 언어로 서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