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비극은 죽음이 아니다. 비극은 자아-이야기가 삶을 마치기 전에 끝나는 것이다.(193-194쪽)


먼저 사랑해서 먼저 청혼하고 결국 결혼했지만 결혼생활 내내 감응 없는 남편 때문에 우울의 나날을 보내는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늘 운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숨죽여 흐느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살아 있으나 사실상 죽은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아-이야기가 삶을 마치기 전에 끝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이야기함으로써,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로서 존재하는 생명인 인간에게 이야기 길이 막혀 있다면, 이 말고 다른 비극은 비극도 아닙니다.


저는 그에게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라 일러주었습니다. 울음소리가 이야기 길을 다시 여는 최초의 언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가 그는 제 말대로 했습니다.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처음으로 문을 열고 들여다보더랍니다. 왜 그러느냐고 묻더랍니다. 우는 동안 옆에 앉아 있더랍니다.


부부가 무엇이겠습니까. 순도 99.99% 타인으로 만나 “자아-이야기”를 통해 공동체적 삶을 살기로 쌍무계약을 체결한 사이입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통약 불가능한 측면이 있습니다. 동시에 경이로움을 찰나마다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인 측면도 있습니다. 이 대칭성 사이에서 노닐고 지지고 볶고 하면서 ‘따로 또 같이-이야기’를 빚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부 이야기에서 인간의 모든 이야기가 잉태되고 출산되며 양육됩니다.


역사는 이 모든 이야기가 잉태되고 출산되며 양육되는 시간 과정입니다. 사회는 이 모든 이야기가 잉태되고 출산되며 양육되는 공간 구조입니다. 정치는 이 시공에서 어느 누구도 “자아-이야기가 삶을 마치기 전에 끝나는 것”이 강요되지 않도록 하는 임무입니다. 오늘 여기 그 역사가 훼절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결딴나고 있습니다. 정치가 도리어 “자아-이야기가 삶을 마치기 전에 끝나는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250꽃별의 이야기를 영구 봉인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매판독재 이야기만 지절거릴 수 있도록 협잡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해야 할 때입니다. 통곡은 격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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