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임은 아픈 사람과의 지속적인 연대감에 기반을 둔다. 이 연대는 개인의 몸이 현재 건강한지 질병이 있는지의 문제를 초월한다.(186-187쪽)


자기 자신을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결정을 최대한 뒤로 미룹니다. 언제나 약속시간에 늦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연대하는 힘이 약해져서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구태여 서구 정신의학적으로 병명을 붙인다면 그것 또한 전형적인 우울장애입니다.”


이런 경우 성격이 우유부단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래도 낫습니다. 대부분 이 청년처럼 스스로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게으르다고 비난합니다. 어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묻는 청년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결정을 뒤로 미룰 때, 그냥, 아, 그렇구나! 하십시오. 약속시간에 늦을 때, 그냥, 아, 그렇구나! 하십시오. 부정 어법의 비판과 비난은 독입니다. 긍정 어법의 부추김은 더 큰 독입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면 스스로와 연대할 길이 열립니다. 스스로와 연대하면 더 이상 미루고 늦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통합된 생명감각으로 책임이 복원되기 때문입니다.”


나와 연대하는 일은 남과 연대하는 일의 기원이 됩니다. 아픈 나와 연대한 사람은 아픈 남과 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의 천명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잃고 아파하는 세월호 유족과 연대함으로써 시민들은 무한히 열린 책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정작 무한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는 무책임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는 아픈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왜 연대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초월자의 자리로 올라가버렸습니다. 그는 무책임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곧 무책임입니다.


자기 자신을 게으르다고 생각하던 그 청년한테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자꾸 눈물이 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우십시오. 책임이 그대를 안아줄 것입니다.”


이 백성은 엉엉, 소리 내어 우는 통치자를 볼 길이 영영 없는 것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