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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몸을 치료하는 것은 상품이다. 약의 형태를 띠건, 서비스의 형태를 띠건, 어떤 방식으로 지불되건 간에, 그것은 상품이다. 텔레비전 광고는 모든 질병에 치료약이 있다는 생각을 주입시키기 때문에, 그리고 치료약을 구입 가능한 포장된 상품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강력한 주인서사다.(178쪽)
몇 해 전, 청담동 사는 젊은 여성이 심인성 안면홍조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진료과정과 처방 내용이 모두 스마트하다는 평과 함께 다음 주에 또 오겠다며 밝은 표정으로 일어섰습니다. 다음 주 약속한 시각에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선생님은 패키지 치료 않으시나요?”
요컨대 고가의 치료 상품 구매하고 ‘신분에 맞는’ 결제를 하러 왔는데 딸랑 예비상담료와 한약 한 제 값만 받으니 불쾌했던 것입니다. 싸구려 취급 받았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녀는 필경 접수처에서 이런 유의 말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상담 12회, 한약 6제로 일차 치료가 종료됩니다. 540만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현금 일시불일 경우 500만원입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대한민국은 돈, 그러니까 상품성 하나로 모든 기준이 통일된 나라입니다. TV드라마 속에서 재벌가에 가난한 며느리가 들어올라 치면 ‘근본 없는 물건’이라고 내동댕이치는 장면은 이미 상투적인 고전이 되었습니다. 돈 많다고 어찌 근본 있는 사람이 되는지 의아해하는 것은 물색없습니다. 돈이 바로 저들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얼마짜리인가, 가 모든 가치의 기준입니다.
자, 정색하고 묻습니다.
“당신의 근본은 얼마짜리입니까?”
이 질문으로 일거에 제압되는 사회는 이런 중산층 기준을 지닙니다.
- 부채 없는 30평대 아파트
- 연봉 6000만원
- 승용차 2000cc급 중형차
- 통장 잔고 1억
- 해외여행 1년에 1회
이 질문으로 일거에 제압되지 않는 사회는 이런 중산층 기준을 지닙니다.
-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 사회적인 약자를 도울 것
-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것
-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을 것
전자는 한국입니다. 후자는 미국입니다. 제 경우 한국에서는 도저히 중산층일 수 없고, 미국에서라면 제3항이 조금 문제가 되기는 해도 대체로 가능합니다. 우리사회가 이렇게 ‘상품의 문제’로 극단화된 것은 매판독재분단고착 세력 때문입니다.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 쿠데타, 제노사이드로 점철된 현대사의 어둠은 모두 저들이 만든 그늘입니다. 지금도 저들은 제노사이드에 이어 역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윽박지르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이대로 살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이 질문 앞에 서보십시오.
“당신의 근본은 얼마짜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