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경험은 직접적으로 조우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거나 빚어지는 것”이라·······경험하기 위하여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상상은 의식이 자기 자신의 경험에 대해 주권을 획득하기 위해 하는 투쟁이다.(152쪽)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의미를 좇는 사람과 재미를 좇는 사람. 그 중 의미를 지나치게 좇다가 무의미의 함정에 빠진 경우를 우리는 우울증이라 합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본디 있는 의미를 남보다 민감하게 찾아내는 단계를 넘어 본디 없는 의미를 만들거나 빚습니다. 의미를 만들거나 빚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섬세하고 깊은 의미부여는 끝내 무의미를 낳습니다. 왜냐하면 의미란 것도 유한하기는 마찬가진데 우울증 앓은 사람은 그 유한성을 받아들일 수 없어 ‘무한의 그림자’인 무의미에 덮여버리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무한이 허상이니 무의미도 허상입니다. 허상으로서 무의미감이 우울증 앓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저 또한 긴 세월 무의미감에 시달려왔습니다. 지나친 의미 감각 때문임은 물론입니다. 우울증을 치유하는 과정의 전반 오랜 기간 동안은 의미 감각 자체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의미와 무의미의 역설적 일치를 깨달으며 얼마만큼 잔잔함에 깃들었습니다. 여전히 무언가 남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질문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왜 의미 감각이 증폭되었는가?’에서 ‘어떻게 의미 감각이 증폭되었는가?’로 말입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치유 과정 후반은 이 질문을 부둥켜안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그렇지 않지만 의미를 ‘만들고 빚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의미부여를 하기 위해서는 “상상해야 한다”는 사실을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그랬습니다. 과연 저는 상상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치기어린 백일몽부터 시작하여 체계적 지식에 터한 임상적 독창성에 이르기까지 제 상상은 가난과 불우, 그리고 마음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최초의 방어이자 최후의 공격이었습니다. 비록 평범함의 든든한 지평을 확보하지 못한 채,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우울증과 단단히 엮였을지라도 그로 말미암아 제 ‘지나친’ 상상은 운명 너머 천명의 소식을 들려준 전령이었습니다. 하여 저는 상상이 증폭시킨 의미부여의 병리 건너편 진실에 대하여 실팍지게 사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제 이런 사유에 적절무비의 마무리 문장을 내놓았습니다. “상상은 의식이 자기 자신의 경험에 대해 주권을 획득하기 위해 하는 투쟁이다.


상상이 자기 자신의 경험에 대한 주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는, 상상은 제이의第二義적 생각, 그러니까 인습에 얽매인 자각 없는 생각과 결별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 그 어떤 생각도 상상과는 무관합니다. 둘은, 상상은 단지 관념이 아니라 삶의 실재라는 것입니다. 관념에 투쟁이란 이름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250꽃별과 함께하는 상상으로 매순간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원장으로 한의원에 실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연대, 독립전쟁의 동지로 저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저와 함께 오늘의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살아 있는 신화를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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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8 2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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