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기억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자아를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만든다.” 좋은 이야기는 경이로움으로 끝맺으며, 경이로움의 능력은 제도·······의 관료적 합리화로부터 되찾아진다. 당신 자신에게 있어준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자아가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149쪽)


식사기도 또는 반주飯酒 같은 글쓰기를 수행 또는 습관처럼 오랫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작품이라 하기에는 심히 보잘 것 없고, 낙서 더미라 하기에는 전쟁 같은 시간들이 배어 있습니다. 이따금 저는 제가 썼던 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합니다. 문득 어떤 순간 문장 하나가 “경이로움”으로 다가듭니다. 그토록 잘 쓴 글이어서가 아니라 놀랍도록 낯선 사유 자체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글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곰곰 생각에 잠깁니다. 이 무슨 일인가?


삶의 모든 순간은 저마다 특별한 곡절을 지닙니다. 그 곡절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끌어안으면 각별해집니다. 특별함에서 각별함으로 전환되는 찰나, 우리가 느끼는 서늘한 따스함이 바로 “경이로움”입니다. “경이로움”은 놀랍지만 감탄을 자아내고, 낯설지만 와락 안겨듭니다. “경이로움”은 인간이 느끼는 감각 중 세계의 진실을 포착하는 독보적인 감응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이로움”을 느끼는 그 찰나, 무상·고·무아는 단박에 증득됩니다. 


자신에게 있어준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의 몸을 통해 구현되는 특별한 자아의 순간을 그 때 그 때 느낀다는 것은 영원한 변화 속에서 특이한 결을 잡는다는 것이며, 놀랍고 낯선 것이 주는 떨림을 그대로 품는다는 것이며, 무너지는 자아와 쌓여지는 자아의 교차점에서 내남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이로움을 느끼는 능력”입니다. “경이로움을 느끼는 능력”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늘 “경이로움” 앞에 서야 합니다.


매일 아침 250꽃별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하루를 엽니다. 수백 번 부른 이름인데 느닷없이 낯설게 부딪혀오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즉시 멈추어 섭니다. 유심히 그 이름을 들여다봅니다. 오늘 아침은 명예 3학년 3반 김지인 앞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마치 처음 보는 이름처럼 문득! 오늘 아침 김지인은 제게 “경이로움을 느끼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이로써 인간이었습니다. 하물며 그의 엄마 아빠는 어떨까, 싶으니 가슴이 터질듯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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