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픈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은 완전히 개인적인-나의 고통은 나만의 것이다-동시에 공유되는 것이·······다.(94쪽)


마음병을 앓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 고립이 자기만 그렇게 고통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내 속은 아무도·······.” 본질적으로 같은 상태에 있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자기 고통이 훨씬 더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이런 고립이 병을 더 깊게 합니다. 병이 깊을수록 이런 고립이 단단해집니다. 악순환입니다.


이런 악순환에서 풀려나 고통의 “공유”, 그러니까 치료의 길로 한 발 내디디게 하기 위해 제가 하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청傾聽 또 경청敬聽함으로써 고통 받는 사람이 느끼는 심리적 고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합니다. 해석과 평가에서 오는 지적‘질’을 삼가고 그 심리적 실재의 실재성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입니다. 저의 이런 자세를 감지하면 무심코 악순환의 궤도를 돌던 마음 아픈 사람이 일단 멈춰섭니다. 그가 멈춰서면 저는 나머지 하나의 일을 시작합니다. 나지막이 제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이지요. 남 이야기인 제 이야기에 그가 유심히 귀 기울이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순간 악순환의 궤도는 금이 갑니다.


언제나 단박에 금을 내지는 못합니다. 그의 입에서 “그래도 선생님은·······.” 하는 말이 흘러나오기 일쑤입니다. 겸손하게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은유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실패의 고백이 아닙니다. 끝내 “나의 고통은 나만의 것”인 진실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고통은 원천적으로 접근 불가능합니다. 나만의 고통에 남이 도달할 수 없는 한계로 말미암아 우리 삶은 각각 특별합니다. 특별하므로 각별해집니다. 각별함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것은 탐욕입니다. 탐욕이 아닌 한에서 기다림은 반복됩니다. 반복이 쌓여 축복으로 전환될 때까지.


숙명적 누락을 안은 채 일부가 공유됨으로써 고통은 공동체 실재로 움직입니다. 고통의 공동체일 때만 공동체는 진정한 공동체입니다. 우리사회가 지구촌의 추문으로 떠도는 까닭은 자기 고통만을 고통이라 우기면서 수많은 타인의 고통을 유발하는 자들의 수탈적 통치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덮고 총선에 승리하기 위한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이라기보다 이 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폭거는 치밀하게 준비된 쿠데타로 읽는 것이 맞습니다. 매일 청와대에 보고하는 비선조직 TF까지 가동해왔다니 말입니다. 저들은 명백히 집단적정신병에 걸린 것입니다. 중증입니다. 폐쇄병동이 필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