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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 존재로서 우리의 가장 어려운 의무들 중 하나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듣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또한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행위이다.·······타자를 위해 들음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듣는다는 것·······이야기에서 목격의 순간은 요구의 상호성을 확고히 하는데, 이 때 각각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77-78쪽)
2015년 10월 18일 오후 광화문에서 단원고 명예3학년 9반 정다혜의 아버지가 딸아이 곁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팠습니다. 슬펐습니다.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절망감으로 아뜩해졌습니다. 홀로 술을 마시며 제 영혼이 뒤척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밤늦도록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돌았습니다. 저 또한 한 딸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딸을 추억하던 그 아버지의 음성이 여태도 귓가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듣기는 어려운 일”임을 통감합니다. 어려워도 들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인간 존재로서 우리의 가장 어려운 의무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타자를 위해 들음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듣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듣는 그 “때 각각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인간은 인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혜를 죽이고 다혜 아버지도 죽음으로 몰아간 자들은 오늘도 귀를 막고 있습니다. 저들은 듣는 인간homo auditus이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오직 자기가 떠들 때만 귀를 열어 자기 말만 듣습니다. 자기만의 말에 오르가즘을 느끼는 도착 귀鬼들입니다. 저들은 이제 역사를 죽이자고 떠드는 자기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사나무 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