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여러분은 이야기들과 함께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이야기들과 함께 생각하라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내용으로 환원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야기와 함께 생각하는 것은 그 이야기를 이미 완결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이야기와 함께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고, 그 효과 속에서 개인의 삶의 어떤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74-75쪽)


상담하는 인간homo consiliaris.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여기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이야기들과 함께 생각하라”는 요청에 극진히 감응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경청傾聽합니다. “내용으로 환원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는” 짓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전제와 분석틀을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경청敬聽합니다. “이야기를 이미 완결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야기 자체를 공경한다는 것입니다. 경청하고 또 경청함으로써 이야기가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험”하고 “그 효과 속에서 개인의 삶의 어떤 진실을 발견”할 때, 상담하는 인간homo consiliaris 하나 탄생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아픈 이야기를. 그것도 슬픈 이야기를. 그 사이 제가 겪은 가장 근본적radical이고 급진적radical인 변화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는 순간 몸이 먼저 골똘히 듣는 자세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몸이 골똘히 듣는 자세를 취하면 감성은 활짝 펴지고 이성은 고요히 접힙니다. 이야기를 흠뻑 들을 수 있습니다. 감염이 스며들고 경험이 번져옵니다. 진실에 닿습니다. ‘사흘’ 뒤 이야기와 저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가 꽃피기 시작합니다. ‘사흘’은 감응 발효를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사흘’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제가 이야기로 아픔과 슬픔 전해온 사람을 치유한 적은 없습니다.


상담하는 인간homo consiliaris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동안 무슨 말이든 남의 말을 들을 때 무조건 무장해제하고 듣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 습관이 때때로 제게 크고 작은 손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일상의 삶은 대부분 손익을 다투는 거래입니다. 그 거래에서 ‘사흘’이 필요한 상대방은 많지 않습니다. 상담실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물론 맞지만 저 같은 어수룩한 사람한테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보는 손해가 그나마 돈 따위면 견딜만합니다. 더러 인격과 인연에 끼쳐오는 손해는 참으로 쓰디씁니다. 삶의 이런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 안고 살아가는 것을 운명이라 하면 너무 남루해집니다. 저는 이것을 천명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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