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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포스트모던적인 자아의 대안적 형태·······는 “타자를 위한 자아, 타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아”이다.·······
·······자아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되는 것으로 이해되며, 자아는 타자를 위해 살아감으로써만 인간임을 지속할 수 있다.·······(60-61쪽)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세상에 대한 책임이라는 생각은 포스트모던의 핵심적인 도덕을 반영한다. 이야기하기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만큼이나 타자를 위한 것이다.·······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야기는 증언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65쪽)
몇 해 전 어느 교회에서 강연을 요청해왔습니다. 한의사가 마음의 병을 상담으로 치료한다 하니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정신과 양의사 두 사람이 앉아서 제 강연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제 이야기가 무척 낭만적이라고 했답니다. 그 이유는 제가 환우와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을 전한 이에게 대답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존재의 문제라고.
물론 서양 정신의학은 의사를 치료의 단독 주체로 설정하므로 상담에서 평등이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됩니다. 환우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분석과 처방을 위한 것일 뿐 의학 서사의 주체적·능동적 콘텐츠로 삼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이들 서양 정신의학의 경계 지음을 모두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의 이러한 태도는 제가 낭만주의자라서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견지하고 있는 인간존재에 대한 이해와 의학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자아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되는 것으로 이해되며, 자아는 타자를 위해 살아감으로써만 인간임을 지속할 수 있다.”
서양 정신의학에서 “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타자를 위해 살아감으로써만 인간”인 의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말한다면 서양 정신의학에서 의사는 인간이 아닙니다.
의사가 자기 이야기를 하느냐 마느냐, 도 마찬가지 문제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세상에 대한 의사의-인용자 부가- 책임이라는 생각”이 바로 제 생각입니다. 이는 비단 세상에 대한 책임 뿐만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야기는 증언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자기 앞에 앉은 환우는 물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사가 자기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않는다면 그 자체로 수탈 행위입니다. 특정 병력이 있느냐와 상관없이 의사 또한 완전하지 않은 도상의 존재입니다. 의사 또한 죽는 날까지 자라가야 하는 과제를 지고 있습니다. 자라감으로서 치료는 상호작용입니다. 의사는 증언의 의무에서 벗어난 예외적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정교한 거짓말(허윤진 평론집 『5시 57분』44쪽)에 지나지 않는 이른바 ‘과학인 의학’ 위에 올라타 떠는 시건방을 의사는 즉각 내려놓아야 합니다. “타자를 위한 자아, 타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아”의 길로 내려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타자를 위해 살아감으로써만 인간임을 지속할” 길을 이탈한 자들은 의사뿐이 아닙니다. 부패한 사회의 지배층은 모두 이런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드디어 엊그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세월호를 뒤집던 그 협잡으로 이번에는 역사를 뒤집겠다고 날뜁니다. 자기 삶을 변화시키지 않겠다고, 아니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 이야기를 거부하려는 저 인간 아닌 종자들을 우리가 과연 어찌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