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모던 시대에 다른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압도하는 것은 의학적 서사이다.·······아픈 상태에 부여되는 핵심적인 사회적 기대가 아픈 사람 스스로·······자신을 의사의 치료에 양도해야 하는 것·······서사적 양도narrative surrender·······처방된 물리적 치료법을 따르기로 동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의학적 용어로 말하기로·······동의한 것이기도 하다.·······

  ·······의학은·······알지 못하는 언어로·······공격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남게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능력이 복원되는 때이다.·······아픈-인용자 첨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이차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게 될 때 포스트모던 경계를 건널 수 있다.(45-48쪽)


느지막이 들어간 한의대에서 공부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해부학이었습니다. 한의대가 웬 해부학이냐 하실지 모르지만 양의대가 한의학을 의학으로 인정하지 않아 일절 배우지 않는 것과 달리 6년 동안 서양의학 각과를 기본적인 것은 모두 배웁니다. 양의사는 한의사가 자신을 흉내 낸다고 하지만 흉내가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해부학도 1년 동안 배우는데 아주 내실 있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여기서 유급자가 몇 명씩 나올 정도로 문제적인 과목임에 틀림없습니다. 제 경우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라틴어나 영어로 되어 있는 용어를 무조건 빨리 암기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결국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말로 암기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아마 해부학 교수는 매우 난감했을 것입니다.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놓고 인정할 수도 없고·······. 자기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만학도의 궁여지책을 마지못해 묵인하여 적절한 학점을 주었습니다. 덕분에 유급을 면하고 본과 2학년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해부학 공부 때문에 낑낑거리던 어느 날 문득, 고등학교 막 졸업한 한의대 학생들은 아마 갑자기 맞닥뜨린 한의학 한자 용어를 제가 맞닥뜨린 해부학의 외국어 용어와 거의 동일하게 어려워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한자는 그림에 가까웠을 테니 말입니다. 중견 한의사가 된 지금도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획순 틀린 채 그림 그리는 상태로 한자 용어를 적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 대부분 그냥 한글 음으로 표기할 것입니다. 양의학이든 한의학이든 전공한 의료인한테도 이럴진대 의학과 전혀 상관이 없는 환자들한테 의학 용어와 의학 이야기는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지나지 않겠지요. 자기 자신의 질병과 고통과 삶에 관한 이야기와 전혀 소통할 수 없는 환자의 자기소외를 저자는 “서사적 양도narrative surrender”라 표현했습니다. 저는 surrender를 양도라 번역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도란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나 법률상의 지위 따위를 남에게 넘겨주는 자발적·능동적 행위입니다. 환자는 자기 질병에 관한 서사의 권리를 의사에게 자발적·능동적으로 넘겨주는 것이 아닙니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surrender는 항복입니다! “의학은·······알지 못하는 언어로·······공격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남게 한다.”는 말이 정확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환자가 의학적 진단과 치료로 “공격” 받고 의학적 서사로 거듭 “공격” 받는 시대를 모던 시대라 합니다. 환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능력이 복원되는 때”를 “포스트모던 시대”라 합니다. 포스트모던은 이 책이 나올 무렵 일세를 풍미했던 논쟁적 용어입니다. 오늘 날 이 말 자체를 새삼스럽게 쟁점 삼을 이유는 없습니다. 의학적 서사의 “압도”적 “공격”에서 환자를 해방할 당위성에 맞추어 “복원”의 상징으로 재소환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환자가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일차적인 중요성”의 호위를 받으며 해낼 때 “포스트모던 경계”가 뚫립니다. 포스트모던의 바다에서는 의학적 서사가 하나의 섬에 지나지 않습니다. 환자의 사회인문적 서사에 감싸인 ‘중요하지만 작은’ 특이점일 따름입니다. 의사가 의사이기 전에 인간이듯 의학적 서사는 의학적 서사이기 전에 인간의 서사여야 합니다. 인간의 서사로 귀환하려면 환자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경청傾聽하고 또 경청敬聽해야 합니다. 의사의 참 지위post는 필경 환자의 ‘포스트-post-’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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