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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질병은·······이야기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다.·······이야기는 단지 질병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상처 입은 몸을 통해서 말해진다. 아픈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은 그들의 몸으로부터 나온다.·······
·······마음은 몸 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확산된다·······.
이야기 속에서 아픈 몸을 표현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가지는 명백하게 사회적인 측면은 그것이 누군가에게·······말해진다는 점이다.(39-41쪽)
13-18세 미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25% 이상이 두통, 요통, 경추통 등 각종 만성통증에 시달리는데 우울증과 같은 정신장애가 선행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반드시 톺아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를 제시해줍니다.
아이들이 통증을 호소하면 어른들은 대뜸 약국 가서 진통제부터 사다 먹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진통제’의·약학인 서구 의·약학 체제에 편입된 변방 국가의 낯익은 풍경입니다. 통증은 그 자체로 병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통제로 통증을 억제하는 것은 통증의 원인이 되는 진짜 병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잘못을 범하게 합니다.
아이들이 통증을 호소하면 가장 먼저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일상생활의 전후 맥락을 살펴야 합니다. 삶에서 벌어진 일은 삶에서 수습해야 합니다. 스트레스라는 두루뭉술한 말 한 마디로 때우지 말고 마음의 결을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마음이 어루만져지지 않으면 몸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청소년의 경우 우울증을 심리적으로 직접 드러내지 않고 몸 증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위 연구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마치 무슨 신기한 발견이라고 한 것처럼 떠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 심신이원론의 부산물이지요. 마음은 몸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몸 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확산된다·······.”
몸에 통증이 일어날 때, 진통제로 통증을 잡는 것은 아픈 몸을 통해 확산되는 마음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확산을 끊지 않는 방법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함으로써 마음을 확산시키는 것은 단순한 전달 행위가 아닙니다. 이야기 자체가 진단이며 치료입니다. 진단이자 치료인 한, 이야기는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에 닿아 있는 무엇입니다. 인간은 이야기함으로써, 아니 이야기로서 존재합니다. 이는 매순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야 할 준엄한 진실입니다.
어제 먼 곳에서 한 청년이 격심한 우울증을 안고 찾아왔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 법학과에 입학할 정도의 재원이었는데 우울증으로 무너져 삶이 피폐해진 상태였습니다. 3시간 동안 상담을 했는데 청년이 묻습니다.
“선생님, 이런 이야기로 치료가 되기는 되는 겁니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지요.
“아니, 이야기 따위로 어떻게 치료를 하겠다는 겁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우울증은 그 자체로 이야기인 병입니다. 이야기인 병에 이야기보다 더 좋은 치료법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