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9쪽)

  ·······의학적 서사가 아픈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너무 많이 빠뜨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학적 이야기는 빈약하다. 그것은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과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포함하지 못한다.·······질병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자아를 재창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에 의료 서사는 빈곤한 자원이다.(16-17쪽)


이론을 다루는 의학서든 임상에서 나오는 진료부든 의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모두 외국어일 따름입니다. 아픈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모국어의 세계에서 외국어의 세계로 내팽개쳐집니다. 그들의 모국어는 아주 조금, 증상과 치료 과정에서 지각되는 변화의 표현 정도를 빼면 의학적 서사에 끼어들 틈이 전혀 없습니다. “의학적 서사가 아픈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너무 많이 빠뜨린다”는 지적은 지적 이상으로 사실입니다. ‘아픈 사람 없이 아픈 사람에 대한 것만 있는’ 난해 서사가 바로 의학적 서사입니다. ‘아픈 사람 없이 아픈 사람에 대한 것만 있는’ 난해한 의학적 서사에 대해 여태까지 아픈 사람들이 본격적인 의문을 제기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자리 매겼기에 목소리가 없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기되지 않았으므로 문제일 수 없었던 이 문제를 이제 정색하고 제기해보겠습니다.


의학적 서사는 인간 생명의 질병 현상과 그 치료를 다루므로 그 어떤 서사보다 핍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핍진함은 의당 아픈 사람의 경험과 증언에 힘입어야 합니다. 물론 진단과 치료에서 전문적 지식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까지 일일이 아픈 사람의 경험과 증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질병도 생명 현상의 하나이며 생활의 일부이므로 질병의 진단·치료가 그 생명·생활 주체를 배제한 의사의 단독행위일 수만은 없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질병과 그 진단·치료를 둘러싼 사태 전체에서 의사가 개입하는 의료 부분은 중요하지만 극히 작습니다. 의사의 의료적 개입이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유효한 경우보다 더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픈 사람의 삶에서 명멸해가는 육체적·심리적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경제적 문제,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의사는 개입하려고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현행 의료적 서사가 “빈약”하고 “빈곤”한 소이입니다.


새로 쓰는 의료적 서사는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과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질병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자아를 재창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서사는 일으켜지는 장場이 아픈 사람의 질병과 생활이므로 기본적으로 아픈 사람, 그 당사자의 입에서 나옵니다. 아픈 사람의 식민지성 극복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아픈 사람들의 연대가 불가피합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이 이 서사를 빚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의사가 도울 수 있으려면 의학 개혁이 선행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류의학의 기계론적 패러다임을 혁파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의학교육에서 인문교육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인문교육을 제대로 하는 의대는 전혀 없습니다. 현행 의학과 의학 교육으로 양성되는 의사가 아픈 사람의 삶, 자아 재창조 문제에 관심 두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아픈 사람들은 함께 뛰어야 합니다. 의사들은 날아야 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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