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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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 자본주의는 생산성의 증진을 위해 본래는 노동의 타자라고 할 수 있는 놀이의 영역마저 점령한다. 감성 자본주의는 삶의 세계와 노동의 세계를 게임화한다.·······

노동의 게임화는 호모 루덴스를 착취한다. 인간은 이제 놀이하는 가운데 지배의 메커니즘에 예속된다.·······

  ·······자유로운 시간은 오직 노동의 타자만이, 생산력이 아닌 다른 힘, 어떤 노동력으로도 전환되지 않을 어떤 힘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다.·······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생산의 피안에서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찾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진정한 행복은 일탈·······에 있다.·······노동과 생산의 과정에서 분리된·······놀이는 사물을 자본의 신학과 목적론에서 해방시켜 사물의 완전히 다른 쓸모를 발견하게 해준다.(71-75쪽)

 

2013년 이른바 중독법안 논쟁이 한창일 때 토론회 패널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쟁점은 둘이었습니다. 인터넷게임에 아이들이 중독된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고 할 때 그 책임을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에게 지우는 것이 맞는가? 진중권, 이인화를 비롯한 뜨르르한 패널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를 비판하였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그 법안이 전제하는 중독 개념도 오류거니와 당최 법안 발의가 토건·경찰 행정적 발상에 터한 정치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간단한 기조발언만 하고 토론회가 진행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아, 무명의 한의사라 발언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부각시킬 쟁점이 아니어서 입을 다물었지만 사실은 좀 더 깊고 본질적인 쟁점이 있었습니다.

 

“게임은 과연 놀이인가?”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질문 자체가 실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에서도 주된 것은 그 말 속에 contest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실제 속에서는 승패가 걸린 노동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각적인 성공과 보상 체계가 작동함으로써 무한히 가속되는 경쟁 상태에 놓이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게임화된 노동이든 노동화된 놀이든 “호모 루덴스를 착취한다. 인간은 이제 놀이하는 가운데 지배의 메커니즘에 예속된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중독의 쟁점을 넘어섭니다. 토건·경찰 행정적 착취보다 깊은 문제입니다. 놀이의 왜곡과 훼손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노동과 생산의 과정에서 분리된·······놀이”만이 인간을 “자본의 신학과 목적론에서 해방시켜·······준다.

 

호모 루덴스”의 복원. 목적도 목표도 계획도 의미도 없이 즐거이 노는 인생, 그런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주어집니다. 이런 능동적 휴식으로서 놀이가 예속적 노동을 해방합니다. 어찌 노동 없이 사는 게 가능한가, 궁금해 하실 수 있습니다. 노동과 놀이는 입자적 모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착취 없는 노동일수록 놀이와 이루는 파동적 교집합 영역이 커집니다. 노동과 놀이가 파동적으로 일치할수록 인간의 탐욕은 줄어듭니다. 인간의 탐욕이 줄어들수록 자본주의의 음모는 먹혀들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음모가 는적는적해질수록 노동과 생산은 휴먼스케일을 유지합니다. 휴먼스케일이 유지되는 세상은 그 자체가 놀이입니다. 놀이인 세상에서라면 놀이는 노동을 감싸 안은 어머니와 같습니다.

 

결국 놀이가 인간을,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지배의 메커니즘”에서 이탈하면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사물의 완전히 다른 쓸모를 발견”하는 길에 서면 행복해질 것입니다.

 

저는 가난한 한의사입니다. 제 가난 때문에 돈 더되는 의료 노동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웃과 함께 자유로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에 동참하는 것이라면 노동을 놀이로 삼을 생각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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