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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기분은 반성 이전의 층위, 행위하는 인간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반의식적이며 신체적이고 충동적인 층위에 속한다.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는 이러한 반성 이전의 층위에서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기분을 장악한다. 심리정치는 기분을 통해 인격 깊숙한 부분까지 개입한다. 기분은 인격의 심리정치적 조종을 위해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매체가 된다.(70쪽)
기분이란 말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표현이 바로 “기분이다!”입니다. 이는 찰나적인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 즉 기분파가 행동을 개시할 때 외치는 강령 같은 것입니다. 기분은 판단 없는 결단을 촉발시키는 모멘트입니다. 즉자적 긍정성이므로 당최 부정성이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저자는 이를 “반성 이전의 층위”라 합니다.
반성 이전의 층위는 본디 포유류의 층위입니다. 포유류의 층위에서 윤리적 판단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다 싫다면 그만입니다. 옳다 그르다는 없습니다. 이 부분을 조종하면 욕구를 예속 상태로 묶어둘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신자유주의의 곳간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포유류는 욕구 너머 욕망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욕구를 넘어선 욕망은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획득한 것입니다. 진화의 성공이기도 하고 실패이기도 한 인간의 욕망에는 음성되먹임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항문 없는 진드기처럼 터져 죽을 때까지 욕망은 제 길을 갑니다. 바로 이 욕망의 불가제약성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전지전능해집니다.
결국 문제는 욕망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악마성은 “기분을 장악”하여 욕망을 무제한 증폭시키는 데서 드러납니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려면 욕망의 실재를 직시해야 합니다. 욕망의 무한 긍정이 악을 생산한다고 해서 욕망을 깡그리 부정하고 억압하는 것을 답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휴먼스케일을 벗어난 선은 악 앞에 무력합니다.
긍정과 부정의 양극단을 떠난 역동적 중도가 답입니다. 중도는 중간이 아닙니다. 공존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욕망의 휴먼스케일을 합의하는 사회적 지혜가 중도입니다. 휴먼스케일의 근간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등한 공적 참여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등한 공적 참여로써 인정한 욕망의 스펙트럼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게 중도입니다.
중도를 향한 길 위에 국가도 있고 정치도 있고 법도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인간의 이상입니다. 물론 현실은 다릅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는 그 이상에서 너무 멀리 이탈한 상태입니다. 지배집단이 대놓고 신자유주의 앞잡이가 되어 휴먼스케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단 하나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어서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