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규율체제는 들뢰즈에 따르면 마치 “몸”처럼 조직되어 있다. 그것은 생정치의 체제다. 반면 신자유주의 체제는 마치 “영혼”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심리정치가 이 체제의 통치 형식이 된다. 그것은 “회피할 수 없는 경쟁을 끊임없이 확산시킨다.” 이로써 “유익한 승부욕과 탁월한 행위 동기”가 촉발된다는 것이다. 모티베이션, 프로젝트, 경쟁, 최적화, 자발성은 모두 신자유주의 체제의 심리정치적 통치술에 속한다.(33-34쪽)
우리 역사에서 문제적이었던 수많은 인물 가운데 황진이만한 영원의 아이콘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기생이라는 멍에를 지고 산 여성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그의 자유는 당대의 스승 서경덕까지 존중한 고귀한 표상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와 달리 황진이가 유혹했으나 고고한 서경덕이 넘어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서경덕이 황진이의 몸과 영혼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그리 한 것이고 이에 황진이가 공감·동의한 것입니다. 황진이가 당당히 화담 학파의 대모로 살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 위대한 두 자유인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 해석이 궁금하신 분은 김탁환의 『나, 황진이』를 읽어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가부장적 양반사회에서 기생의 몸을 거두는 것이 영혼까지 취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서경덕과 황진이의 선택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몸도 영혼도 시대의 맥락과 사회의 지평을 뛰어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몸을 압제하여 착취하는 자본의 시공에 있을 때 자유의 모습과 영혼을 조종하여 착취하는 자본의 시공에 있을 때 자유의 모습은 다릅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변이체”(15쪽)라 하거니와 실제로 그것은 신식민지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전략 이론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신식민지주의는 독립국가라는 하드웨어는 주되 정치경제의 소프트웨어를 장악함으로써 “섬세하고 유연하며 스마트”(28쪽)하게 식민 지배를 관철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어법에 따라 말하면 “몸”의 지배를 내주고 “영혼”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예속을 업그레이드시킨 것입니다. 업그레이드인 까닭은 그것이 “모티베이션, 프로젝트, 경쟁, 최적화, 자발성”을 장착하고 “경쟁을 끊임없이 확산”시킴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극대화된 이익은 각자도생의 사막으로 내몰리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예속 주체들의 자기 착취에서 발생합니다. “이처럼 친절한 권력은 억압적 권력보다 더 막강”(31쪽)한 법입니다.
자기 착취를 자유로 착각하는 오늘 여기에서 진정한 자유는 그러면 무엇이며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영혼이 예속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가짜 자유에 속고 있는 자신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심리정치적 통치술”인 “모티베이션, 프로젝트, 경쟁, 최적화, 자발성”을 하나하나 응시해야 합니다. 거절해야 합니다. 돈의 동기 부여, 돈에 의한 자발성과 최적화, 돈을 위한 기획과 경쟁을 기꺼이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는 공존을 위한 비워내기입니다. 비워내면 삶은 승부가 아니게 됩니다. 승부가 아닌 삶의 동기는 단 하나, “목적 없는 우정”(11쪽)입니다. 목적 없는 우정으로 함께 살아가는 느낌, 알아차림, 받아들임이 다름 아닌 자유입니다.
우리사회는 식민지주의와 신식민지주의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매판세력이 어엿한(!) 독립 국가를 차려놓고 종주국의 조종 아래 몸의 억압과 영혼의 유혹을 양수겸장으로 구사합니다. 한병철은 독일에서 독일어로 이 책을 썼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한국어로 이 책을 읽습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유를 위해 황진이와 서경덕의 격조 높은 사랑, 아름다운 연대를 꿈꾸어봄 직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