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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모든 명령 체계, 모든 지배의 기술은 피지배자를 예속시키기 위한 고유한 성물Devotionalie을 만들어낸다. 성물은 지배 관계의 물질화로서 지배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 성물은 곧 예속됨Devot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일종의 디지털 성물이다. 아니, 디지털 성물이 곧 스마트폰이다.(25쪽)
지난 토요일 지인과 식사하고 술 한 잔 하다가 음식점에 스마트폰을 두고 나왔습니다. 다음날 아침에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후에 다시 음식점을 찾았으나 휴무였습니다. 연락은 물론 송금과 같은 실생활의 상당 부분을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만 이틀 동안 이런저런 성가심이 톡톡 심사를 건드렸습니다.
성가심보다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은 불안이었습니다. 느닷없는 분리 또는 불연속이 환기하는 예기豫期 불안 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분명한 내용도 없고 어떤 지향도 없는 염려 또는 초조가 순간적으로 싸하게 속을 후비며 들어오고는 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중독에 육박하는 익숙함이 단절되면서 밀려드는 격정일 것입니다.
익숙함은 곧 “예속됨”입니다. 예속된다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상황이 별안간 엄습해올 때, 그러니까 자유가 들이닥칠 때 전방위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불안은 이렇게 안팎이 맞물리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존재입니다.
편리함에 녹아 자유를 체념하는 상황에서 불편함을 통해 자유 감각을 일깨우는 분리 또는 불연속, 이것이 바로 스마트폰 없는 이틀의 진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스마트폰 없는 이틀은 스마트폰 있는 날들에 비하면 작은 틈에 지나지 않지만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각성의 빛, 돌이킴의 빛 말입니다.
스마트폰을 찾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불안의 파랑 밑에 갈앉아 있던 알 수 없는 평온의 정체가 다름 아닌 소통 없음의 자유, 적요의 자유였다는 사실. 소통이 강제인 세상, 훤화喧譁가 예속인 세상에서 소통을 중단하고 적요의 시공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 홀로 앉아 달곰쌉쌀한 술을 마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