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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우리는 정말로 자유롭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자유롭지 않아도 되려고 신을 발명하지 않았던가? 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빚을 진 존재다. 그런데 빚은 자유를 파괴한다.·······우리가 빚이 없다면, 즉 완전히 자유롭다면, 우리는 정말로 행동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행동하지 않아도 되려고, 즉 자유롭지 않아도 되려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영원히 채무자로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자본은 우리를 다시 채무자로 만드는 새로운 신이 아닐까?(18-19쪽)
저는 생애 초기 10년 동안 아버지가 없는 상태에서 자랐습니다. 10대의 10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20대의 10년을 다시 헤어져 살았습니다. 30대 초반 아버지는 60이 안 된 나이에 세상과도 헤어졌습니다. 함께하지 않은 20년은 물론 함께한 10년 동안에도 아버지는 거의 아버지로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 무엇보다 제가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서서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순간, 앞 옆 뒤 어디에도 서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제 나이 이제 60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일에 대해 지녔던 10살 이전 어린아이의 두려움이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찮은 일과 커다란 일 사이에 구분 없는 절대 두려움이 매 순간 들이닥치곤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발끝이 타들어오는 듯했던 이 경험들이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우울증의 발화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데에는 주체적으로 결단하는 자유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자유에는 당연히 얽매이지 않을 것, 목적을 이룰 가능성이 열려 있을 것, 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매우 중대한 요소를 우리는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맡김입니다. 내맡김은 믿음을 전제합니다. 믿음은 주체, 그리고 주체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으로서 신뢰입니다. 인간의 상호작용으로서 신뢰는 인간의 근본 환경을 형성합니다. 인간의 근본 환경의 핵심에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의 핵심에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 가운데 아버지는 아이의 자유에 내맡김의 힘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입니다. 내맡기지 못한 채 망설이고 미루는 두려움이 자유를 잠식합니다. 행동의 순간마다 아버지가 그리운 소이가 여기 있습니다.
인간 그 누가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단과 행동과 책임의 전후 맥락에서 완벽한 자유를 구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현실과 가능했으면 싶은 이상의 경계에서 집적된 실용적인 지혜가 “신을 발명”하였습니다. 이 발명된 신은 두려움을 맡아주는 대리 부모 노릇을 합니다. 절대적 드넓음the Spaciousness으로 승격된 이 대리 부모에게 의지하는 모든 종교의 본질은 유아 행태입니다. 아이의 현실에서 어른의 이상으로 나아가는 숭고를 체념한 타협입니다. 아니 중독입니다.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깨달음은 “완전히 자유롭다면, 우리는 정말로 행동해야 한다.”가 아닙니다. “완전히 자유로우려면,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입니다. 자유로운 자가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자가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립지만 저는 아버지를 찾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