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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우리는 자유 자체가 강제를 생성하는 특수한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다. 할 수 있음의 자유는 심지어 명령과 금지를 만들어내는 해야 함의 규율보다 더 큰 강제를 낳는다. 해야 함에는 제한이 있지만, 할 수 있음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 수 있음에서 유래하는 강제는 한계가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역설적 상황에 빠진다. 자유는 본래 강제의 반대 형상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강제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처럼 강제의 반대여야 할 자유가 강제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10쪽)
모순 관계에 있는 두 사태 또는 가치가 공존할 때 그것을 역설이라 하므로 여기 “반대 형상”이라는 표현은 다소 모호한 채로 모순을 지시한다고 봅니다. 자유와 강제가 모순 관계임이 맞는다면 둘의 공존은 분명코 역설입니다.
자유가 강제를 가져오는 오늘의 상황이 과연 모순의 공존일까요? 아닙니다. 강제는 실재이고 자유는 환상입니다. 자유는 강제의 가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순처럼 보이고 공존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자본의 음모입니다.
진실의 전경全景을 품고 다시 위 본문을 보면 첫 문장을 아래와 같이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강제 자체가 자유를 생성하는 특수한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다.”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 우리는 자본의 음모에 이중으로 착취당하게 됩니다. 무제한의 강제는 결국 우리가 구가하는 무제한의 자유 탓이라는 죄책감마저 떠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이와 같은 악무한까지 계산에 넣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자유란 인간 생명이 지니는 각성 상태의 지향으로 강제의 견고함을 깨뜨리는 상태 또는 행위입니다. 참 자유이려면 영속적인 강제를 위해 사이비 자유를 만들어 우리를 농락하는 자본에 대한 최후의 사유를 시작해야 합니다.
자본은 인간이 탐욕과 공포, 그리고 무지의 주문으로 불러낸 영물靈物입니다. 수단으로 시작했으나 목적이 되었습니다. 종으로 시작했으나 주인이 되었습니다. 하급 영으로 시작했으나 유일신이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의 생사여탈은 자본의 권한입니다.
자본의 이 절대적 ‘영성’은 무수한 단위의 공동체를 지배하는 극소수 헤게모니 집단이 시공으로 얽히며 비고의적 고의를 가지고 기획한 작품입니다. 고대노예제사회의 황금기를 부활시키기 위한 ‘신노예제사회’ 건설 프로젝트가 목하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신노예제사회는 1% 지배집단이 99% 피지배집단을 명목상 자유 주체로 만들어줌으로써 수탈당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더 잔혹한 노예체제입니다. 신노예제사회에서 노예인 줄 모르는 노예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오늘 여기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는 그야말로 생사를 걸고 이 질문부터 해야 합니다.
“나는 매판독재분단세력의 노예가 정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