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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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서는 외상적 기억이 불안 상태에 대한 특정한 해결책이 된다.(227쪽)


상담치유 하는 의자醫者로 살아오는 동안 마음 아픈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면 수백 권의 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 치유의 길을 찾은 사람들도 있고 끝내 길을 찾지 못한 채 저와의 인연이 끝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이야기들 가운데는 격정 상태에서 부풀려진 에피소드도 있었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숨긴 사실도 있었을 터이니 그 이야기들을 죄다 어김없는 사실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거짓이라고 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치유 이야기에서 참·거짓 문제는 그 진부함에도 아랑곳없이 늘 새로운 쟁점임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순간마다 상황마다 다른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 정색하고 질문해보겠습니다.


“거짓 기억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병을 치유할 수 있는가?”


상처에 대한 거짓 기억을 말하는 것이 과연 치유 효과를 내는 자기언급self-reference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대답하기 전에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 연유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참 기억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을 치유해야 본디 이치에 맞는다는 전제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면 두 가지 선결 문제가 생깁니다. 우선 과연 온전한 참 기억을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 다음은 상처로서 기억 때문에 마음병에 걸린 사람이 온전한 참 기억을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단도직입으로 말하자면 모든 기억은 해석입니다. 기억은 녹음이 아닙니다. 객관적인 순수 사실의 기억은 없습니다. 참 기억이란 해석을 포함하는 진실을 의미합니다. 해석은 기억하는 주체의 모든 주관적 조건을 반영합니다. 주체마다 기억이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통시적 맥락과 공시적 지평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것은 거짓이고 저것은 참이다 결론을 내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더욱 엄밀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마음이 병리 안에 들어와 있는 그 자체가 이미 격정emotionalism 상태이므로 여기서 이른바 참 기억을 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격정 상태의 해석을 그대로 담은 기억이 도리어 참 기억일 것입니다. 더더욱 세밀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생애 초기 상처의 기억으로 갈수록 깊은 마음병의 근거가 되고 참과 거짓의 구분도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결국 마음병이란 이렇게 어린아이 상태, 또는 그와 본질이 같은 격정 상태의 유지·확산 반응입니다. 치유는 양육 과정입니다. 이런 진실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짓 기억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병을 치유할 수 있는가를 묻는 사람은 이미 자기 답이 정해져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거듭 질문해보겠습니다.


“거짓 기억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병을 치유할 수 있는가?”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100% 온전한 참 기억이란 없다는 사실이 옳다고 전제할 때 말입니다.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100% 온전한 거짓 기억이란 없다는 사실이 옳다고 전제할 때 말입니다.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참과 거짓의 이분법으로 풀어낼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참과 거짓은 필연적으로 공존하며 뒤엉킵니다. 기억 치유에서 참인가 거짓인가를 따지는 것은 관건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격정이 촉발되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유지·확산되어 가는지 살피는 것이 관건입니다. 아픈 사람의 격정적 진실과 건강한 사람의 정서적 진실 사이에 차이가 있을 때 전자를 거짓이라 하는 것은 치유의 문제를 도덕의 문제로 판단하는 일종의 범주오류입니다. 치유는 격정 반응을 아픈 사람의 진실로 가감 없이 수용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격정 반응을 정서 감응으로 바꾸어 나아가는 과정이 치유 과정입니다. 치유는 거짓을 바로잡아 참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아이 상태에서 건강한 어른 상태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치유는 둘 중 하나를 단박에 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 다를 끌어안고 발효시키는 기다림의 문제입니다.


결국은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요? 격정에 사로잡혀(합일) 있던 아이 상태를 벗어나(분리) 자유로운 정서를 구가할 수 있는 상태로 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치유자는 엄마가 되기도 하고 멘토가 되기도 하고 아군이 되기도 하고 적군이 되기도 합니다. 치유자는 모순입니다. 이로써 아픈 사람과 더불어 역설을 빚어내면 다시없는 인연일 것입니다. 물론 그 치유자가 꼭 남일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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