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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5월
평점 :
남성들이 흔히 연애 문제에 대해·······강박적 의례들과 스스로 부과한 규칙들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여성은 상대 남성에게 자신이 어떤 대상인지에 관한 난제에 부딪힐 때 연애를 거부하고 제자리로 돌아가 우울하고 무관심한 상태에 빠져 있을 수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희망하는 대로 사랑받지 못했음을 깨닫거나 자신이 더는, 남성의 연애 환상을 형성하는 중심인 대상a가 아님을 인정할 때 흔히 체념의 몸짓을 보인다.(165쪽)
서구의 뜨르르한 ‘지식’을 대하다 보면 한 순간 어이없어지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겪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이 보편적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전제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실수 아닌 실패를 하는 것일 테지요. 문명적 패권과 진실의 보편성을 혼동한 결과입니다. 민속학적 수준의 관찰을 여과 없이 인류 전체에게 적용하는 것은 이미 익숙한 풍경입니다. 라캉이 강박 이야기를 하면서 구약성서 창세기를 들먹인 것이 그 예입니다. 규범적 차원의 이야기를 하는데 엉성한 우발적 예시로 치밀한 구성적 열거를 대체하는 것도 상습화된 전략입니다. 여기 본문의 히스테리(신경증) 이야기가 그 예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히스테리신경증을, 정신적 에너지가 육체적 증상으로 바뀌어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미국 정신의학 협회의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5>는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라고 이름 합니다. 전환장애라는 이름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의미 함축은 본질을 꿰뚫은 것이 아닙니다. 본질을 놓치다보니 일시적 기억 상실, 의식 소실, 마비와 같은 증상들을 “우울하고 무관심한 상태”나 “체념의 몸짓”이라는 부정확한 표현의 예시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환장애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강박장애와 비대칭적 대칭 관계에 있다는 진실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한 통찰이 없기 때문에 자꾸 핵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는 어떤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떨쳐버리고 싶은데도 시도 때도 없이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상태라고 흔히 정의됩니다. 이 정의도 본질을 놓친 것입니다. 강박장애는 변화에 대한 불안의 병리적 처리 반응입니다. 법칙이나 규칙적 리듬을 강고하게 붙잡음으로써 변화가 몰고 올 위험을 막으려는 방어 작용입니다. 이와 반대로 전환장애는 법칙이나 규칙적 리듬이 지니는 인과구조나 필연적 알고리즘에 대한 불안의 병리적 처리 반응입니다. 법칙이나 규칙적 리듬에서 비인과적으로 갑자기 이탈함으로써 현실 고착이 몰고 올 위험을 피하려는 방어 작용입니다. 전환은 강박의 상대어입니다. 정신적 에너지가 육체적 증상으로 바뀌는 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기억상실이나 의식 소실과 같이 육체 증상이라 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전환장애라는 말은 잘못 쓰이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진실에 부합하는 이상한 용어임에 틀림없습니다.
가부장적 사고의 유제를 불식시키지 않은 냄새가 나지만 저자가 강박과 히스테리를 남녀에 각각 연계한 것은 역학疫學적으로는 물론 뇌 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정치경제학 비판의 지평에서 보더라도 의미가 있습니다. 강박은 좌뇌형 이성주의 지배체제의 보수 계략에 가 닿습니다. 전환은 우뇌형 감성주의 양육체제의 혁신 운동에 가 닿습니다. 질병으로서 강박장애, 전환장애의 진단과 치료도 이런 광폭 시각에서 전면 재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전환장애에 대한 남성가부장의학의 굴절된 시선부터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진실을 세우기 위한 본격 연구를 이제 시작해야 합니다. 갈 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