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all Me Inspirational: A Disabled Feminist Talks Back (Paperback)
Harilyn Rousso / Temple Univ Pr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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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정희진의 글을 읽고 한달음에 달려가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독서는 매우 천천히 띄엄띄엄 이루어졌습니다. 긴장감과 책임감을 유도하지 않는 글 솜씨에서 나온 글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긴장감과 책임감을 유도하는 먹물 티내는 글에 익숙해온 터라 처음부터 바싹 다가들어 읽지 못하였습니다. 느슨하게 읽어 가다가 뒷부분 어디쯤부터 속도가 빨라지고 독서 지속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마지막은 가야금산조 휘모리장단으로 들었습니다.

 

1. 마침 라캉주의 철학자 레나타 살레츨의 『불안들』을 읽으면서 주해 리뷰를 쓰는 중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정반대의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책입니다. 해릴린 루소를 다 읽고 난 뒤 든 생각은 세상을 바꾸는 힘은 라캉 같은 천재의 난해한 이론서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애 여성으로서 산 삶과 거기서 배어나오고 거기로 배어든 생각들을 쉽게 정직하게 쓴 글을 읽으며 받는 감동이 라캉의 고도한 사유의 겹과 결을 뒤적이며 맛보는 충일감보다 훨씬 더 휴먼스케일에 가까웠습니다. 높고 깊고 넓은 인문 지식을 따라 성큼성큼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걸음 앞을 보아서 한 걸음 나아는 것이 인간의 변화입니다.

 

2. 저자 스스로 이 책을 콜라주라 했듯 자유분방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구조랄 것도 없는 구조입니다만 마지막 여섯 장은 가히 일품입니다. 이 부분만 떼어 읽어도 저자가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맨 마지막 세 장은 천하의 명품 코다coda입니다.

 

나의 비장애인 자아를 떠나보내며

나의 괴물 자아를 떠나보내며

나의 장애인 자아에게 바치는 글

 

비장애인 자아는 이상理想의 상태로 부풀려진 자아입니다. 비장애인은 정상인이라는 잘못된 통념에 따른 극단화입니다. 괴물 자아는 저주의 상태로 부풀려진 자아입니다. 장애인은 비정상이라는 잘못된 통념에 따른 극단화입니다. 저자는 오랜 세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널을 뛰며 살았습니다. 흔쾌히 인정하고 흔쾌히 떠나보냅니다. 남은 것은 오직 있는 그대로의 실재, 장애인 자아입니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딱 100점짜리 자아입니다. 정상인이 100점짜리 자아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정상인은 당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은 비장애인대로 비정상인으로서 100점입니다. 장애인은 장애인대로 비정상인으로서 100점입니다. 온몸으로 온 삶으로 깨달은 그 진실을 이렇게 나지막한 우뚝함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정든 몸뚱이야, 넌 내게 참 잘해줬어. 내가 너에게 한 것보다 훨씬 자비롭게 나를 대해줬어. 우리 둘 중에 네가 더 품위 있고 더 지혜롭구나. 네가 나를 품어주었듯이 이제 나도 너를 품어주고 볼품없는 움직임을 한계가 아닌 생명의 신호로 받아들일게.”

 

3. 저자는 이 깨달음을 실어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라고 일갈했지만 정희진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은이가 몹시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대단한 이유는 우리가 시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는 나도 눈물이 나려 한다.”

 

동의하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시시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장애인일 수도 있고 비장애인일수도 있습니다. 장애인이면서 장애인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비장애인이면서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시시한 우리입니다. 이제 눈물이 나려 하십니까?

 

4. 장애는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장애인도 있습니다. 사회는 이를 몸의 장애인처럼 장애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울장애를 지닌 사람을 우울증 환자라고 부르는 것과 뇌성마비를 지닌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립니다. 본질은 동일합니다. 마음의 장애를 지닌 사람들도 스스로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괴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널을 뜁니다. 그들에게도 치유의 외길은 자신의 장애인 자아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실제로 마음의 문제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한 국민국가의 차원을 넘어, 세계의 문제입니다. 통계에 잡힌 것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 인구 10% 이상이 마음의 장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0. 오늘도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떤 분과 긴 시간 상담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장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도록 간곡히 권했습니다. 너나없이 그게 잘 안 되는 이 ‘시시함’에 함께 서서 붙들고 울어보실까요?

 

* 도서 검색에 번역본이 뜨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원서 를 올렸습니다. 번역본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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