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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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대상의 결여가 아니라 결여의 결여, 즉 결여의 자리에서 대상이 출현함으로써 유발된다.·······불안은 특별히 자유와 연관되었다.·······자유로운 주체는 바로 불확정성, 즉 자유에 수반되는 “가능성의 가능성” 때문에 불안하다.(108-110쪽)

 

결여의 결여는 부정否定의 부정입니다. 통속한 서구논리로 하면 부정의 부정은 긍정입니다. 한[아래아 한], 그러니까 원효 논리로 하면 부정의 부정은 부정不定입니다. 부정不定은 불확정성, 즉 자유에 수반되는 “가능성의 가능성”입니다. 불확정성으로서 부정不定은 불변하는[상常] 실체[아我]를 인정하지 않습니다[무상·무아無常·無我]. 무상이고 무아인 상황은 무한히 세워지고[입立] 무한히 깨드려집니다[파破]. 세우고 깨뜨리는 찰나마다 주체의 자유가 작동합니다. 무한을 향해 열린 자유는 그 아득함으로 말미암아 불안이 생명 감각에 배어들게 합니다. 생명 감각으로 들어온 불안은 자유에 휴먼스케일의 지표를 숨은 그림으로 새겨 넣습니다. 휴먼스케일을 떠난 자유는 영혼을 허영에 들뜨게 하거나 참담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허영은 행복의 이름으로 오는 위장된 질병입니다. 참담은 질병의 이름으로 오는 억압된 행복입니다. 행복의 이름으로 오는 허영은 돌아오기 어려운 파멸의 길입니다. 하이퍼-자본주의는 이를 축복하여 파멸을 재촉함으로써 돈벌이에 이용합니다. 질병의 이름으로 오는 참담은 아프게 돌이키면 진리를 향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하이퍼-자본주의는 이를 약물로 꼬드겨 옆길로 새도록 함으로써 돈벌이에 이용합니다. 휴먼스케일을 떠나지 않는 자유는 무한히 세워지고[입立] 무한히 깨드려지는[파破] 마주침과 맞물림을 투철하게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화쟁和諍]으로만 가능합니다. 화쟁으로 열린 세계의 진실은 비대칭의 대칭이 온통으로 펼쳐진 전체[일심一心]입니다. 일심의 손바닥 안이라면 불안은 아무리 날뛰어도 문제될 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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