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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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자들이 불안을 다루는 방식 가운데 하나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환상은 주체가 자신에게 일관성을 제공해주는 시나리오, 이야기를 만들어 결여를 덮는 방식이다.·······불안은 결여의 자리에서 어떤 대상, 곧 주체가 현실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환상의 틀을 뒤흔드는 대상과 마주칠 때 나타난다.·······환상을 통해 주체는 결여에 대한 보호막을 스스로 만들어내지만 불안 속에서 결여의 자리에 나타난 대상은 주체를 집어삼킨다-즉 주체를 서서히 소멸하게 만든다.(53-58쪽)

 

역사란 현재의 욕망을 투사하여 과거를 해석함으로써 미래를 기획하는 작업입니다. 해석자가 누구냐에 따라 역사는 진실 추구의 전위에 가까워질 수도 있고 수탈체계의 주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역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이야기의 핵심은 사실史實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자의 “환상”입니다. “환상”은 “결여를 덮는 방식”입니다. “결여를 덮는 방식”으로서 이야기는 반드시 “결여”에 대한 격정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지배집단은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통해 황제·신농·복희 까지 중국의 실제 조상으로 끌어들이고, 한漢족 문화권과는 색깔이 다른 동북아 시원문명인 홍산弘山 문화도 흡수하여 고대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장강長江 문명의 실체가 드러나자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일으켜 재벌 식 MNA 문명사를 날조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고대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왜곡·조작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 두 나라의 주된 공격 대상이 우리나라임은 물론입니다.

 

우리나라 지배집단도 열심히 역사를 왜곡·조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일본과는 정반대로 자기 내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상고사는 아예 관심 밖으로 쫓아내버렸습니다. 스스로 고대의 강역疆域 범위를 좁히고 한사군을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신라 정통론에 입각해 고구려·백제·발해를 홀대하며 ‘통일신라’라는 허구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들의 관심은 서인 노론 집단이 조선을 일제에 팔아넘긴 이후 역사입니다. 자주·민주·통일 위해 희생한 인물들을 테러리스트로, 매국노로, 빨갱이로 몰고 있습니다. 매판·독재·분단고착이라는 치명적 자기 “결여를 덮는 방식”으로 “환상”의 역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저들의 “결여”는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부작위가 아닙니다. 매판·독재·분단고착의 작위입니다. 능동적 “결여”입니다. 능동적 “결여”는 끊임없이 “결여”를 재생산합니다. 세월호사건, 메르스대란 모두가 그것입니다. “환상”의 이야기도 온갖 협잡을 동원해 쓰고 있습니다. 저들을 “소멸”시키려면 저들을 저들이 “사용하는 환상의 틀을 뒤흔드는 대상과 마주”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들이 “사용하는 환상의 틀을 뒤흔드는 대상”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들을 형벌 불안으로 밀어 넣는 것은 물론 진실입니다. 진실은 중립적 사물이나 사태가 아닙니다. 죽임당하고 수탈당한 사람들의 역사, 그 역사의 기억, 그 기억의 이야기가 진실입니다. 물론 결과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기억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에만 머무르면 안 됩니다. 결국 잊히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잊은 자처럼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원인을 캐냅니다. 과정을 살핍니다. 구조를 드러냅니다. 심판합니다. 이것이 저들의 “환상의 틀을 뒤흔드는”, 끝내 저들을 “소멸”시키는 사람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환상 실재” 이야기 행렬입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저들을 홀랑 “집어삼킨다”면야 달리 무슨 여한이 남아 있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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