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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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는 대타자의 결여뿐만 아니라 자신의 결여를 다루면서 불안과 마주친다. 그러나 주체에게 불안의 근원은 결여가 아니라 오히려 결여의 부재, 즉 결여라고 하는 곳에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53쪽)

 

90세 어르신 한 분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50대 초반에 이미 중풍으로 쓰러졌던 분이라 이후 40년가량 인생은 후유증 그 자체라 할 것입니다. 후유증으로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삶의 자세가 바뀌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지나치게 신중합니다. 지나치게 소상합니다. 긍정 사안은 지나치게 과소화합니다. 부정 사안은 지나치게 과대화합니다. 지나치게 애착합니다. 계속 검사 받습니다. 계속 상담합니다. 계속 치료 받습니다. 치료 받는 내내 신음을 토해냅니다. 80세 부인은 말합니다. “평생 저 양반 아프단 말에 내 아프단 말 한 마디 끼워 넣을 틈도 없었다니까.”

 

그 분의 모습을 뵐 때마다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사는 재미와 의미 모두를 는적는적 썩여가는 저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불안. 속수무책 끌려갈 때 음산하게 드리우는 기운, 그 “결여의 부재”. “결여의 부재”는 결여의 부정denial, 그러니까 결여를 삶의 한가운데 받아들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채워도 다 차지 않는데 뭔가를 채웁니다. 아무리 있어도 없다고 느끼는데 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여가 결여인 한 결코 끝내지 못할 부질없는 싸움입니다. 결여란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있어야 하는’ 무엇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본디 없습니다. 무無입니다. 무는 nothing이 아닙니다. 무는 무상無常입니다. 무는 무아無我입니다. 무상은 무아로 말미암습니다. 무아는 무상으로 말미암습니다. 무상의 맥락과 무아의 지평, 그 틈에서 찰나마다 상常과 아我의 실재를 짓는 것이 생명이며 삶입니다. 생명이며 삶인 사건은 불가피하게 통痛(아픔)과 고苦(괴로움)를 수반합니다. 통과 고의 어름에 불안의 기운이 안개처럼 스며있습니다. 생명이며 삶인 사건이 “결여의 부재”로 존속하는 한 불안의 기운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불안이 지닌 비대칭적 대칭성이 삶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 입니다.

 

불안은 본디 전략도 무기도 아닙니다. 전략을 짜고 무기를 동원하도록 자극하는 징후·신호입니다. 불안은 본디 아군도 아니고 적군도 아닙니다. 징후·신호를 잘 읽어 무상 안에서 상을 조절하고 무아 안에서 아를 조절할 경우, 불안은 아군입니다. 조절에 실패하여 여러 격정 상태에 빠질 경우, 불안은 적군입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징후·신호에도 끝내 전략을 짜지 못하고 무기를 들지 못할 경우, 불안 그 자신이 생명과 삶 속에 주저앉아버리기도 합니다. 불안이 생명과 삶을 점령한 이것이 이른바 불안장애입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이른바 공황장애로 나아갑니다.

 

10년 전 전에 10세 된 한 어린이를 치료한 적이 있습니다. 공황장애가 뚜렛증후군으로 발현된 희귀하고 어려운 경우였습니다. 수많은 양의사들이 3년 넘게 뚜렛증후군으로 접근해 치료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저는 불안으로 접근해 1개월 만에 치료를 종결했습니다.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불안이 지닌 저 비대칭적 대칭성의 진실을 소년이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어른 아닌 아이였기 때문에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그 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기적(!?) 하나만으로도 제 인생이 불안에 진 빚은 없습니다. ㅍㅎㅎㅎ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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