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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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거나 듣는 무엇, 즉 분간할 수 있는 대상 혹은 상황을 두려워한다.·······그에 반해 불안은 대상이 없는 두려운 상태, 즉 무엇이 불안하게 하는지 쉽게 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무엇이 불안을 유발하는지 불분명하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두려움보다 공포스럽다.(44-45쪽)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한 쪽 다리로 균형을 잡은 채 서 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눈을 감으면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우리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데 내이 전정기관의 평형감각, 관절에 있는 체성감각, 눈의 시 감각이 필요하다는 과학적 사실에 터하면 눈을 감았을 때 평평 유지가 어렵다는 점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곰곰 이치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분간할 수 있는 대상 혹은 상황”에서 그야말로 순식간에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적이나 맹수가 있는 경우 눈을 감는다는 것은 그들의 공격에 스스로 속수무책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죽임당하지 않으려면 눈을 떠야 합니다. 눈을 뜨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찰나적으로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찰나적으로 불안을 증폭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몸의 부드러운 안정을 갑자기 허물어뜨리는 것입니다.

 

눈을 감은 상태는 근본적으로 어둠 속에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어둠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막연히, 그러니까 특정한 요인을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어떤 공격을 받을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있는 상태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불안을 유발하는지 불분명하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두려움보다 공포”가 더 큰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안의 불편한 생태학입니다.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에 무지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근원도 의미도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고통은 대답 없는 질문의 무저갱으로 인간을 던져버립니다. 절대 불안입니다. 절대 불안에 처한 인간이 존엄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늘 여기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숭고하게 수행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월호사건 유족입니다.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어떤 의미로 죽임을 당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습니다. 온갖 욕설과 비아냥거림과 저주를 견디고 있습니다. 그 참아 견딤의 한가운데 저들의 존엄이 분황芬皇으로 피어 있습니다.

 

두려움보다 공포스러운 불안의 요인을 없애며 이미 생겼다면 그 불안을 걷어내라고 만든 국가와 헌법, 그리고 권력이 도리어 국민을 한꺼번에 불안으로 몰아넣는 아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세월호사건, 메르스대란은 이 아수라가 쌓아올린 불안의 금자쌍탑입니다. 다시없는 고통이며 모멸입니다. 청초가 되살아나는 몸에 초췌로 사위어가는 마음을 담는 일이 이렇게 염치없는 일일 줄 참으로 몰랐습니다. 마음의 초췌를 부르는 이 불안은 대체 어디서 왜 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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