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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오늘날 감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파놉티콘적 시선에 자신을 내맡긴다. 사람들은 자신을 노출하고 전시함으로써 열렬히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동참한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수감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101-102쪽)
지난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때 대한민국의 장군들은 두 패로 나뉘어 보복 공격을 할 것인가 일주일 동안 입씨름하다가 결국 한미연합사령관에게 가부를 물었다고 합니다. 미국이 시키지 않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대한민국 군대의 이 한심한, 그러니까 매국적인, 아니 ‘종북’적인 상황은 대체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요?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이 신식민지이기 때문입니다,
신식민지란 제이차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를 말합니다. 독립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군사적으로 사실상 다른 나라에 지배되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이 왜 어떻게 신식민지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74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
대통령의 국군 통수의 핵심은 전시 작전통제권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국군 최고 책임자)에게는 전시 작전통제권이 없습니다. 1950년 이승만이 자발적으로 미국에 헌납한 이후 되찾아오지 못한 까닭입니다. 국가원수에게 국군 통수의 핵심권한이 없는 국가가 왜 어떻게 명실상부한 독립국가일 수 있는지요.
이 참담한 대한민국의 국군 수뇌부가 지난 대통령선거에 개입했습니다. 쿠데타에 준하는 헌법 유린 행위임에도 이렇다 할 정치권의 문제 제기가 없자 저들은 도리어 정신전력원을 만들어 종북 퇴치 교육을 하겠다고 의기양양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자가당착입니다.
신식민지주의 “수감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상황에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고 전시함으로써 열렬히” 신식민지 “건설에 동참”합니다. 저들이 함정에 빠진 까닭은 신식민지주의가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유롭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투명사회의 기만적 통제와 감시가 중첩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순의 땅입니다. 국제적으로 이루어지는 통제와 감시는 이미 본 바와 같습니다. 국내적으로도 형식은 멋진 민주공화국이지만 매판·독재·통속종교 지배집단이 민주주의도 공화국도 해체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고 전시함으로써 열렬히” 신노예제 전제군주국 “건설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투명사회』저자는 간결하고 냉정한 문장으로 책을 닫습니다.
“자유는 곧 통제가 된다.”(1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