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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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Prozession·······은 서사적 사건이다. 행렬은·······강력한 방향성을 지닌다.·······반면 프로세서의 전진procedere에서는 어떤 서사성도 찾아볼 수 없다. 프로세서의 작동에는 어떤 이미지도, 어떤 장면도 없다.·······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프로세서는 오직 셈할zählen뿐이다.(65-67쪽)

 

인간은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입니다. 이야기하는 인간이어야 인간입니다. 심지어 인간은 이야기Narrative입니다. 이야기는 기억입니다. 기억은 창조입니다. 창조는 변화입니다. 변화는 경이입니다. 경이는 존엄입니다.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인간은 기어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야기는 “방향성”을 지닙니다. 방향성은 걸맞은 “이미지”와 “장면”을 거느리며 풍요로운 내용을 빚어갑니다. 이들이 함께 엮이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재미가 다양한 결로 분화됩니다. 분화의 경계는 각각의 사회를 구획합니다. 분화의 맥락은 역사의 흐름을 바꿉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이야기는 인간의 생명입니다. 그 삶입니다. 이야기를 금하는 것은 인간을 살해하는 것입니다. 그 삶을 절멸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모든 투쟁은 이야기 투쟁입니다. 누가 과연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 존재로 살아남느냐를 놓고 격돌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대한민국은 실로 중차대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부정선거를 해도, 수백 명의 국민을 죽여도, 그 진실을 은폐해도 승승장구하는 권력이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이야기를 ‘살殺처분’하고 있습니다. 재벌과 종교가 부역하므로 희망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여기서 공포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포기하고 당장 살아남기 위해 “셈할zählen뿐”이면 장차 아이들은 어찌 할 것입니까. 아니, 그보다 먼저 이미 죽은 아이들은 대체 어찌 하라는 것입니까. 이러고서야 우리가 어떤 “이미지”, 어떤 “장면”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을 것입니까.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어림없습니다. 기억으로 창조 행위를 해야 합니다. 창조 행위로써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변화를 통해 경이로운 세계를 열어야 합니다. 경이로운 세계에서 비로소 우리는 존엄합니다. 존엄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기어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 이야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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