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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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는 사진의 두 가지 요소를 구분한다. 첫 번째 요소를 그는 “스투디움studium”이라고 부른다.·······‘좋아하다’의 범주에 들어간다.·······격렬함이나 열정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두 번째 요소인 “푼크툼punctum”은 “스투디움”을 깨뜨린다. 그것은 호감이 아니라 어떤 상처, 격한 감정, 당혹감을 낳는다.·······또한 사진은 “고요”해야 한다고 바르트는 말한다. “고요를 향한 노력” 속에서 사진은 자신의 푼크툼을 드러낸다. 푼크툼은 사색적 머무름을 가능하게 만드는 고요의 장소이다. 사람들은 포르노 사진 앞에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런 사진들은 전시된 것이기에 현란하고 시끄럽다.(57-61쪽)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가장 민망한 특징은 “호들갑”입니다. 환희도 호들갑을 떨며 표현하고 고통도 호들갑을 떨며 표현합니다.

 

환희에 대한 호들갑을 상품으로 개발한 것이 다름 아닌 긍정심리학입니다. 긍정심리학에 터한 다양한 자기계발·치유 프로젝트는 거대 기업과 고등종교의 후원을 등에 업고 문명사회의 파워 스트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통에 대한 호들갑을 상품으로 개발한 것이 다름 아닌 진통鎭痛의학입니다. 진통의학에 터한 다양한 의약·치료 프로젝트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의료장비 개발업체의 후원을 등에 업고 문명사회의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긍정심리학과 진통의학은 “전시된 것이기에 현란하고 시끄럽”습니다. 긍정심리학과 진통의학은 “머물러 있지 않는” 신속함으로 투명한 효과를 제공해야 합니다. 신속할수록 투명해지고 투명할수록 소란스럽습니다. 투명사회 사람들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어깨를 으쓱대며 “와우!” 하고 소리친 다음 하이파이브를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상 화두는 행복입니다. 인간의 행복 추구 자체를 시비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행복과 환희를 동의어로 여기는 오류입니다. 이 오류가 긍정심리학이라는 괴물을 낳았습니다. 긍정 일변도의 환희 포르노는 반드시 광기狂氣로 귀결됩니다. 바야흐로 광기의 시대입이다.

 

인간에게 쾌락은 필수 감각입니다. 인간의 쾌락 추구 자체를 시비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쾌락과 무통을 동의어로 여기는 오류입니다. 이 오류가 진통의학이라는 괴물을 낳았습니다. 진통제가 제공한 향락 포르노는 반드시 중독으로 귀결됩니다. 바야흐로 중독의 시대입니다.

 

광기와 중독으로 요약되는 투명사회의 “호들갑”을 떨쳐내려면 “고요를 향한 노력”이 불가피합니다. 고요를 향해 노력하려면 “사색적 머무름을 가능하게 만드는 고요의 장소”인 푼크툼에 깃들어야 합니다. 푼크툼에 깃들려면 그것이 낳은 “상처, 격한 감정, 당혹감”을 품어 안아야 합니다.

 

생떼 같은 목숨을 잃은 “상처”는 투명 처리를 거부합니다. 협잡으로 칠갑한 매판 무리에 대한 분노의 “격한 감정”은 긍정 처리를 거부합니다. 속절없이 잊어가는 노예들의 냄비 정서를 보며 느끼는 “당혹감”은 속도 처리를 거부합니다. “상처, 격한 감정, 당혹감”은 뿌옇고 꺼끌꺼끌하며 느릿느릿합니다. 뿌옇고 꺼끌꺼끌하며 느릿느릿한 것만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환희 앞에서 고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통 앞에서 고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요를 깨뜨리는 소란을 깨뜨리는 바로 그 고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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