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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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은 평화의 상태가 아니다.(42쪽)

 

투명성은 이긴 자만 끝내 이기는 전쟁의 상태입니다. 딱 대한민국 상태입니다.

 

누가 끝내 이기기만 하는 이긴 자일까요? 그들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648년 김춘추는 당나라로 건너가 태종 이세민과 밀약을 맺습니다. 고구려와 백제 치는 것을 도와주면 대동강 이북의 영토를 넘겨주겠다는 내용입니다. 민족사 전체의 방향을 비틀어버린 사건입니다. 역사상 최초로 매판집단이 탄생한 사건입니다. 밀약에 따라 660년, 668년 차례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이로써 광활한 동이의 영토와 그 백성은 당에 귀속되었습니다. 김춘추의 신라가 일으켜, 삼국의 대립을 끝내고 민족의 대통합을 이룬 역사적 사건으로 전승되고 기념되는 저 삼국전쟁은 이렇게 협잡의 본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협잡은 지금까지 끝내 이기기만 하는 집단을 배태하고 양육해낸 거대한 자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무열왕 김춘추의 아들 문무왕 김법민의 비에는 흉노 수장으로 한漢 건국에 공을 세워 투후가 된 김일제가 조상이라 명기되어 있습니다. 김일제 후손이 나중에 왕망의 난을 계기로 한반도 동남부로 이동해와 경주김씨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공식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역사적 근거를 지니는 주장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일부 학자는 흉노가 동이족과 같은 계통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실이면 사실일수록 아니면 아닐수록 이 문무왕비 내용은 김일제 집단과 김춘추 집단의 매판적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절묘한 결합입니다. 만일 흉노가 동이와 같은 정체성을 지닌 민족이라면 김춘추 집단의 통일신라 내러티브는 모순입니다. 당과 야합해 동이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치면서 삼한통일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 경우, 통일신라 내러티브는 매판행위를 은폐하려는 술수일 따름입니다. 만일 흉노가 동이와 다른 정체성을 지닌 민족이라면 김춘추 집단의 통일신라 내러티브는 기만입니다. 고구려와 백제와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것은 민족통일이 아니라, 이민족 정복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통일신라 내러티브는 침략전쟁을 은폐하려는 술수일 따름입니다. 요컨대 삼국전쟁에서 이김으로써 신라는 그 매판적 정체성을 한반도에 공고히 각인해 놓았습니다.

 

삼국전쟁이 끝난 뒤 짧은 세월의 번영기를 빼고 신라는 급격히 쇠락과 멸망의 길로 접어듭니다. 흥융興戎의 피해가 흥륭興隆을 심각하게 잠식해버린 탓입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국가적 잠재력을 흡수하지 못한 사이비 통일임을 증명하는 결과입니다.

 

신라 그 매판의 역사는 동이 정체성을 지닌 왕건집단, 고려의 건국으로 외막이 내려집니다. 왕건집단은 동이의 가치, 고구려 재현을 기치로 세웁니다. 그러나 신라의 내실을 온존시키는 치명적 실수를 범함으로써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김부식으로 상징되는 개경파 신라집단이 도리어 흉노의 꿈을 재현합니다. 고려를 송에 조아리게 하고, 원에 무릎꿇림으로써 고구려를 당에 팔아넘긴 그 매판적 조상의 길로 복귀합니다. 고려는 압록강 일부까지 회복한 국토와 지구적 이름 KOREA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고려, 그 아쉬운 동이 재건의 실패 역사는 이성계집단, 조선의 건국으로 외막이 내려집니다. 이성계집단은 다시 동이의 가치, 고조선의 재현을 기치로 세웁니다. 그러나 고려와 같이, 신라의 내실을 뿌리 뽑지 못함으로써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송시열로 상징되는 서인노론 신라집단이 도리어 흉노의 꿈을 재현합니다. 조선을 명에 조아리게 하고, 왜에 갖다 바침으로써 고구려를 당에 팔아넘긴 그 매판적 조상의 길로 복귀합니다. 조선은 압록·두만 경계의 국토와 한글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서인 노론 신라집단이 팔아먹은 조선은 35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로서 처참하게 짓밟힙니다. 역사와 유적은 물론 국토까지 철저히 유린되었습니다. 여성들은 성노예로 끌려가고 젊은이들은 전쟁터 총알받이로 끌려갔습니다. 이 동안에도 서인 노론 신라집단은 온갖 복록을 누리며 끝내 이기기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도리어 나라 찾으려는 동족을 잡아 죽였습니다. 수탈에 앞장서서 나라와 백성의 부를 일본으로 빼돌렸습니다. 이들 매판적 승리의 비열하고 잔혹한 패악은 실로 형언하기 어려운 범죄였습니다. 이들이 이기고 또 이긴 35년은 같은 민족에게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조선, 그 아쉬운 동이 재건의 실패 역사는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외막이 내려집니다. 대한민국은 다시 동이의 가치, 고조선의 재현, 아니 더 근본적인 한(아래아 한)의 재건을 기치로 세웁니다. 그러나 고려·조선과 같이, 신라의 내실을 뿌리 뽑지 못함으로써 목하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서인 노론 신라집단과 일제에 부역한 신흥 매판집단이 동맹을 맺고 대한민국의 심장을 삼켜버렸기 때문입니다. 기왕의 친일에 숭미·반공을 더해 저 신라 내러티브를 화려하게 재현해냈습니다. 이들은 지난 1400년 동안 축적한 내공을 바탕으로 오늘도 여전히 이긴 자만이 끝내 이기는 전쟁의 상태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 장구한 전쟁사에서 가장 최근 저들이 일으킨 전투가 ‘세월호전투’입니다. 저들은 또 일방적 승리 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 전투에서 저들이 ‘끝내’ 이긴다면 한(아래아 한)도, 동이도, 고조선도, 고구려도, 고려도, 조선도, 대한민국도 끝내 우스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왜 하필 ‘세월호전투’가, 지금이, 변곡점이냐, 묻는 분께 되묻습니다.

 

“그러면 언제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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