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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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국을 위해서 사물들은 아주 조금만 옮겨지면 된다. 이러한 최소한의 변화는·······사물들 자체 내에서가 아니라 사물들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난다.(41쪽)

 

가장자리. 두 사물 사이에서는 어름. 바로 여기가 섭동의 진원입니다. 혁명의 아지트입니다. 창조의 자궁입니다.

 

일리야 프리고진의 산일구조 이론은 개방계의 경우 고립계의 진리인 열역학제이법칙을 넘어 혼동의 평형이 질서의 비-평형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에너지 순환을 의미하는 개방은 소통의 다른 이름입니다. 소통이 섭동입니다. 섭동이 혁명입니다. 혁명이 창조입니다. 창조가 일어나는 곳이 다름 아닌 가장자리입니다.

 

가장자리는 경계입니다. 변방입니다. 달동네입니다. 가리봉 오거리입니다. 안산의 단원고등학교입니다. ‘좌빨’입니다. ‘종북세력’입니다. ‘미개한 국민’입니다. ‘시체장수’입니다. ‘세금도둑’입니다. 가만히 있으란 어른 말 믿었다가 살해당한 이백 쉰 명의 고등학생입니다. 아이들 죽음의 진실을 밝히라 요구하다 “견찰”에 잡혀가는 시민입니다.

 

가장자리에서는 아주 작게 아주 조금만 옮겨갑니다. 옮겨감은 옮아갑니다. 옮고 옮아서 전체로 번져갑니다. 철새 한 마리의 날갯짓이 모이고 모여서 거대한 질서를 이루며 날아가는 것처럼 사소한 목소리 하찮은 몸짓 하나하나가 종당 중심을 흔들고 전체를 새로이 창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웅얼거립니다. 그러므로 꼼지락거립니다.

 

가장자리.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정녕 소중한 말입니다. 이 말을 가슴에 묻고 뼈에 새겨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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