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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투명사회는 내적 논리에 따라 모든 형태의 거리를 제거한다.·······거리가 사라짐에 따라 어떤 심미적 관찰도, 어떤 머무름도 불가능해진다.·······거리가 없다는 것은 가까움을 뜻하지 않는다. 거리의 소멸은 오히려 가까움을 파괴한다.·······투명성은 모든 것을 탈거리화하여ent-fernen 똑같이 거리가 없는 존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존재로 만들어버린다.(36-37쪽)
진부한 이야기지만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닙니다. 무관심입니다. 미움은 관계의 상존尙存입니다. 무관심은 관계의 부재입니다. 관계에는 거리 개념이 성립합니다. 관계의 부재에는 거리 개념 자체가 제거됩니다. 이것이 “탈거리”의 핵심 의미입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사랑은 상호작용입니다. 상호작용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전제합니다. 완전히 같은 사람, 그러니까 한 사람 (사이(?))에 사랑은 애당초 있을 수 없습니다. 거리 개념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탈거리”의 핵심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존재”라는 말은 적절한 거리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멀다, 가깝다’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거리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완전 쪼개지거나 완전 포개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투명성의 “내적 논리”는 폭력적 단일화를 강제합니다. 여기에 따르지 않는 존재는 ‘그래도 관계가 잔존하는 변방’에 두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비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 드라마에서 부자가 빈자에게 던지는 이 한 마디, “저 물건 치워!”가 웅변입니다.
시방 대한민국의 권력은 득의만면 탈거리화의 강력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영구집권의 신천지가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37% 요지부동의 투명신도가 확보되었으니 나머지 물건들을 치워버리면 됩니다. 팔아서 돈을 만드는 것이죠. 참 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