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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의미는 느리다. 의미는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고속순환에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투명성은 의미의 공허와 긴밀하게 관련된다.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거대한 더미는 공허에 대한 공포Horror vacui에서 생겨난다.(36쪽)
오랫동안 우울증을 상담으로 치료해온 제 경험에 따르면 우울증 앓는 사람은 예외 없이 근본적으로 똑똑하고 착합니다. 착하다는 이야기는 다른 기회로 미루고 똑똑하다는 이야기만 여기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똑똑하다는 것은 의미 맥락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지녔다는 말입니다. 의미 맥락을 섬세하게 따라가다 보면 두 가지 불이익을 만납니다.
하나는 “의미는 느리다.”와 관련된 것입니다. 고속의 투명사회에 착취당한다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고속순환”에 치이고 밀리면서 사회의 변방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통해 인격의 성취를 꿈꾸지만 인생의 성공에서 소외됨으로써 ‘똑똑한데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하여 우울증으로 침륜되어 들어갑니다.
다른 하나는 재미를 놓치는 것입니다. 사람 삶의 두 축은 의미와 재미입니다. 두 축이 균형을 이루면 기품 있는 행복을 구가할 수 있습니다. 의미의 결에 너무 기울어지면 자연히 재미에서 멀어집니다. 재미란 것이 처음에는 부박하게 보이고 중간에는 하찮아 보이고 나중에는 부도덕해 보입니다. 이렇게 재미와 절연되면서 종당 우울증으로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의미 맥락의 주름을 걷어내어 매끄러운 표면만 남긴 뒤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고속순환”을 즐기는 것이 다름 아닌 고속투명사회입니다. 재미의 “거대한 더미”로 구축한 향락사회입니다. 향락의 끝은 공허입니다. “허에 대한 공포Horror vacui”로 향락사회는 더더욱 재미에 집착합니다. 재미에 집착할수록 중독된 영혼은 제3의 강령에 매달립니다.
“의미성을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