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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전시의 강제는 가시적인 것을 착취한다.·······전시의 강제는 결국 우리에게서 얼굴을 빼앗아간다. 자신의 본래 얼굴로 머물러 있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35쪽)
사십년 전 봄날 기억 하나를 불러내봅니다. 군인이 일반대학생에게도 군사훈련을 시키던 어두운 시절이었습니다. 그 군사훈련을 교련이라 불렀습니다. 어느 교련 시간에 교수부장이라는 자가 돌연 지휘봉으로 제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발하고 와! 안 그러면 학점 안 준다.” 교련 학점 없으면 졸업이 불가능했지만 저는 그 길로 강의실을 나와 수업에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이십 년 가까이 저는 삼단 같은 머리채가 바람 불면 어깨를 쓸고 지나가는 치렁치렁한 헤어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군인이 남자 대학생 머리카락 길이를 강제했다니, 오늘의 대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찌 생각할까요? 아니! 경찰이 여자 대학생의 치마 길이를 강제했다는 말을 들으면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머리카락도 치마도 일사불란한 전시성 속에 도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시대의 투명한 암흑을 모르는 것으로 편안히 살아간다면 오늘의 대학생은 과연 이 공동체의 주체일 수 있을까요? 이 무지로 말미암아 또 다시 그런 투명한 암흑이 엄습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의 대학생은 과연 무엇일까요?
대학생 한 명의 살해에 분노하여 무수한 대학생들이 짱돌을 들고 거리에 섰던 시대를 우리는 아프고도 아름다웠던 역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이백 쉰 명이 살해되었음에도 괴괴히 침묵하는 대학생으로 넘실거리는 이 시대를 우리는 장차 어찌 기억하게 될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시대 대학생이었던 사람의 아들딸이 지금 이 시대 대학생이 되었고, 그 사회는 또 그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이 사회의 이 대학생은 움직이지 않으니 이 아프고도 또 아픈 풍경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요?
실로 경천동지할 일들을 겪어낸 시간이지만 지난 사십년은 “결국 우리에게서 얼굴을 빼앗아간” 세월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독재자의 죽음에서 시작된 울퉁불퉁한 자주민주통일의 길은 결국 매판독재반통일 세력의 화려한 복귀로 매끈하게 재포장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 “자신의 본래 얼굴로 머물러 있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고 절망해야 하는지요. 사십년 전 봄날, 머리카락, 아니 얼굴을 착취당하지 않으려 발길 돌렸던 대학생, 오늘 거울 앞에 섭니다. 얼굴 남아 있나 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