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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투명성은 색깔이 없다.·······색깔은·······몰이데올로기적인 의견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의견은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의견은 이데올로기처럼 전체를 장악하고 전체를 꿰뚫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의견에는 뒤집어 엎어버리는 부정성이 없다. 그리하여 오늘의 의견사회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건드리지 않은 채로 놓아둔다.(25쪽)
민주화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가, 호랑이굴로 들어가 싸우겠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고 매판독재세력 품에 스스로 안겼던 몇몇 인사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 중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진심으로 그리 할 수 있다고 확신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확신의 근거가 가소로운 것이기는 합니다. 선 자리가 바뀌는 순간 자신들의 주장이 이데올로기에서 의견으로 강등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테니 말입니다.
“의견은 이데올로기처럼 전체를 장악하고 전체를 꿰뚫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의견에는 뒤집어 엎어버리는 부정성이 없다.”
하기는 그 뒤 정치적 거물이 된 두어 사람의 행태를 보면 처음부터 이 점을 알고 있었으며 오히려 민주화투쟁 전력을 정치적 야망을 위한 제물로 삼았거나, 최소한 수단쯤으로 이용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 동안 그들이 제시한 의견意見은 의견조차 되지 못 하고 그저 주인을 보호하기 위한 의견義犬의 짖어댐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불행히도 목하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른바 “의견사회”의 의견은 그 사전적 의미인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하여 자기 마음에서 판단하여 가지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건드리지 않은 채로 놓아”두는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그야말로 투명한 생각 무더기입니다. 그것은 결정적일 때 이런 ‘왕따’를 당하면서 고립됩니다.
“필자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이비 중립문장을 대체 어떤 의도에서 누가 만든 것인지 모릅니다. 관용을 과시하면서 자기집단의 ‘꼴통’성을 은폐하려는 수작이든 그 반대이든 우리사회에 관한 한, 병리현상의 한 표지처럼 보입니다. 이런 딱지가 붙여진 의견이 과연 무슨 힘을 지녀서 전체를 장악하고 꿰뚫을 것입니까. 게다가 뒤집어 엎어버리다니, 이 무슨 언감생심 꿈이나마 꿀 수 있는 일일 것입니까.
의견은 더 이상 필요 하지 않습니다. 색깔이 필요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건드리는, 견고히 축조된 거짓의 체계를 뒤흔드는, 저 부정성이 필요합니다. 색깔을 죽이기 위해 만든 색깔론을 타파해야 합니다. 빨간 목도리 하고 ‘빨갱이’ 타령하는 후안무치 넘어 빨강으로 박애를 선포했던 프랑스대혁명의 색깔정신을 불러내야 합니다. ‘빨갱이’는 색깔이 아닙니다. 빨강이 색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