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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엄격한 의미에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역시 부정성의 현상이다. 이론은 무엇이 여기에 속하는지 속하지 않는지를 결정하는 결단이다. 이론은 고도로 선택적인 이야기로서 구별의 경계선을 만든다.·······구별의 부정성이 없다면 사물들은 온통 제멋대로 증식하며 난교 상태에 빠질 것이다.·······부정성으로서의 이론은 언제나 현실 자체를 현격히 다른 모습으로, 다른 빛 속에서 나타나게 한다.(22-23쪽)
저는 마흔 다 돼서 외동딸 하나를 얻었습니다. 예쁜 이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탐욕이다 싶은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이라는 외자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금이 아니고 은이냐 했지만 사실 그 ‘은’은 조사助辭입니다. 출생신고 할 때에도 한글로 올렸습니다. 이름 뜻을 부모 탐욕으로 채워 닫지 않고 열어두어 아기 스스로 완성해가라는 소망을 담은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부모는 정성을 다해 그 아기의 이름을 짓습니다. 그 정성이 때로는 부모의 탐욕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기 인생의 좌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은 그 뒤로 수없이 불리며 아기와 일생을 함께 합니다. 이름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름을 선언하는 표지입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구별의 경계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기의 이름을 그토록 고심하며 짓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초심을 잊은 부모는 어느 때부턴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가령 “지민아! 화장대 위에 놓인 면봉 하나만 가져와.”할 것이 “야! 저기 하얀 그거 하나만 가져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화장대를 ‘거기’로, 면봉을 ‘그거’로, 지민이를 ‘야’로 부르는 것은 각각의 경계선을 지워 매끄럽고 평탄한 사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사물1, 사물2, 사물3으로 불러도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이론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물이나 현상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일반화한 체계”입니다. 그러니까 이론은 어떤 이치의 이름인 셈입니다. 이치의 이름이기 때문에 논리적 일반화라는 체계가 필요할 뿐입니다. 구별의 부정성이라는 점에서 이론 또한 이름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이름 지음 덕분에 인간의 삶은 각각의 방향과 구획이 생기고 규모가 정해집니다. 때마다 곳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빛 속에서”나타납니다.
현실을 “다른 모습으로, 다른 빛 속에서”나타나게 해주는 이론의 정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고, 그 어느 사회보다 절실한 오늘 여기 대한민국입니다. 그 무엇보다 2014년 4월 16일 맹골수도에서 일어난 세월호참사를 위한 바른 이론을 세워야 합니다. 바른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단순 교통사고라는 이론 정립을 위해, 세월호사고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 온갖 포악질을 하고 있는 협잡배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매일 아침 25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나하나 부르는 이름들은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빛 속에서”우리 현실을 비춥니다. 하나하나 부르는 이름들이 어디서나 “다른 모습으로, 다른 빛 속에서” 우리 현실을 창조해 나아갑니다. 이 이름들을 허공에서 흩어지게 하고서는 우리 모두 인간이 아닙니다. 부디 이 이름들로 말미암아 “다른 모습으로, 다른 빛 속에서”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김수진 김영경 김예은 김주아 김현정 문지성 박성빈 우소영 유미지 이수연 이연화 정가현 조은화 한고운 강수정 강우영 길채원 김민지 김소정 김수정 김주희 김지윤 남수빈 남지현 박정은 박주희 박혜선 송지나 양온유 오유정 윤민지 윤솔 이혜경 전하영 정지아 조서우 한세영 허다윤 허유림 김담비 김도언 김빛나라 김소연 김수경 김시연 김영은 김주은 김지인 박영란 박예슬 박지우 박지윤 박채연 백지숙 신승희 유예은 유혜원 이지민 장주이 전영수 정예진 최수희 최윤민 한은지 황지현 강승묵 강신욱 강혁 권오천 김건우 김대희 김동혁 김범수 김용진 김웅기 김윤수 김정현 김호연 박수현 박정훈 빈하용 슬라바 안준혁 안형준 임경빈 임요한 장진용 정차웅 정휘범 진우혁 최성호 한정우 홍순영 김건우 김건우 김도현 김민석 김민성 김성현 김완준 김인호 김진광 김한별 문중식 박성호 박준민 박진리 박홍래 서동진 오준영 이석준 이진환 이창현 이홍승 인태범 정이삭 조성원 천인호 최남혁 최민석 구태민 권순범 김동영 김동협 김민규 김승태 김승혁 김승환 남현철 박새도 박영인 서재능 선우진 신호성 이건계 이다운 이세현 이영만 이장환 이태민 전현탁 정원석 최덕하 홍종용 황민우 곽수인 국승현 김건호 김기수 김민수 김상호 김성빈 김수빈 김정민 나강민 박성복 박인배 박현섭 서현섭 성민재 손찬우 송강현 심장영 안중근 양철민 오영석 이강명 이근형 이민우 이수빈 이정인 이준우 이진형 전찬호 정동수 최현주 허재강 고우재 김대현 김동현 김선우 김영창 김재영 김제훈 김창헌 박선균 박수찬 박시찬 백승현 안주현 이승민 이승현 이재욱 이호진 임건우 임현진 장준형 전현우 제세호 조봉석 조찬민 지상준 최수빈 최정수 최진혁 홍승준 고하영 권민경 김민정 김아라 김초예 김해화 김혜선 박예지 배향매 오경미 이보미 이수진 이한솔 임세희 정다빈 정다혜 조은정 진윤희 최진아 편다인 강한솔 구보현 권지혜 김다영 김민정 김송희 김슬기 김유민 김주희 박정슬 이가영 이경민 이경주 이다혜 이단비 이소진 이은별 이해주 장수정 장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