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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머무름이야말로 “부정적인 것을 존재로 역전시키는 마법”이다.·······정신은 느리다.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며 그것을 소화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투명성의 시스템은 스스로를 가속화하기 위해 모든 부정성을 폐기 처분한다.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기보다 긍정성 속에서 질주하는 것이다.(20-21쪽)
조울증(양극성장애)을 앓는 매기 로빈슨이라는 사람이 에이즈 환자 수용시설에서 자원봉사 할 때 깨달은 진실을 털어 놓는 한 대목이 기억나, 여기 소개합니다.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물었지. 그런데 그들은 대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더군. 난 그들이 협조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이 담소를 나눌 의사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됐지. 그들은 처음에 몇 마디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내가 떠나기를 원하지는 않았어. 그래서 난 그들과 함께 있어주기로 결심했지. 난 에이즈 환자도 아니고 죽어가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들 곁에서 그들의 모습을 견뎌줄 수 있었던 거지. 그래서 그날 오후에 난 말없이 그들과 함께 있었어. 사랑이란 함께 있어 주는 것, 아무 조건 없이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지. 꼭 무언가를 해 주려고 애쓸 필요도 없지. 난 그걸 배우게 됐어.”(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 643쪽)
매기 로빈슨은 죽어가고 있는 에이즈 환자 “곁에서 그들의 모습을 견뎌”주었습니다. “말없이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 속의“부정적인 것에 머무르며 그것을 소화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홀로 “긍정성 속에서 질주”하지 않았습니다.
질주는 공포입니다. 공포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단 하나의 긍정입니다. 단 하나의 긍정으로 삶을 축소시켜 한 사람 한 사람 내모는 것이 바로 투명사회입니다. 투명사회를 기획하는 자들은 그 축소의 여분을 수탈하여 자기 삶을 확대해갑니다. 수탈을 통한 자기 확대 시스템이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의 가장 비열한 형태가 매판자본입니다. 매판자본의 텃밭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파멸을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질주의 선두 황금마차에 매판 과두寡頭가 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민과 함께 머무르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국민이 어둠, 그러니까 부정성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머무름이야말로 “부정적인 것을 존재로 역전시키는 마법”이라는 진실을 아는 국민에게서 그들은 한사코 등 돌리고 있습니다. 국민에게서 등 돌린 그들의 운명이 장차 어찌 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니, 궁금하지 않습니다.
국민을 공포의 질주로 내몰고 수탈함으로써 확대한 자기네 삶도 결국 공포의 성채에 지나지 않는 다는 진실을 모르는 한, 그들의 영혼은 저주로 썩어문드러질 것입니다. 이 나라 오천 년 역사 내내 그랬듯 금도襟度 드넓은 국민이 마지막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 머무름의 미학을 그들이 알아차리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