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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인간의 영혼은 분명 타자의 시선을 받지 않은 채 자기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불투과성은 영혼의 본질에 속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투명하지 않다.·······그러니까 인간 정신은 균열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자아가 자신과의 일치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해진다.·······사람들 사이에도 틈새가 벌어진다. 그리하여 서로에 대해 투명한 인간관계는 결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타자가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관계를 살아 있게 해준다.······· 투명성의 강제에는 바로 이러한 섬세함, 즉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다름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 오늘날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투명성의 파토스에 맞서기 위해서는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를 위한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거리와 부끄러움은 자본, 정보, 커뮤니케이션의 가속화된 순환 과정 속으로 통합되지 않는다.(16-18쪽)
결혼이란 이 세상에 나와 똑 같은 우선순위로 배려해야 할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삶의 출발점입니다.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평생 뼛속 깊이 새겨야 할 문장이 있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다.” 예상 밖이겠지만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 진실을 지키려면 평생 뼛속 깊이 새겨야 할 어법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서로 싸울 일이 반드시 생기는데, 그럴 때 “너!” 하고 시작하는 2인칭 어법을 쓰면 안 됩니다. 너는 내가 아니므로 네가 지닌 진실을 내 진실처럼 알 수 없음에도 대뜸 “너!” 하면 그게 아무리 천하 없는 진리라도 상대방은 즉각 돌아앉습니다. “나!” 하고 1인칭 어법으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존중의 시작입니다. 존중하면 싸움의 대부분을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신랑을 향해) 김미희는 이연호가 아닙니다. 이연호와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타인입니다. 예의를 다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신부를 향해) 이연호는 김미희가 아닙니다. 김미희와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타인입니다. 예의를 다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출발해야 부부일심동체의 꿈을 그나마 꿀 수 있습니다.
지난 5일 부산, 김미희와 이연호의 결혼예식에서 제가 한 주례사 일부입니다. 스스로에게도 투명할 수 없고 스스로도 투과할 수 없는 인간이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서 처음부터 운위하는 일심동체라는 말은 성급함을 넘어 이치적으로 맞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실상 남성가부장 중심사회가 여성 순종을 강요하기 위해 그 저의를 감추고 쓰는 미사여구라면 더욱 고약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나, 너는 너로 존중하는 “섬세함”을 전제하고서야 비로소 기품 있는 부부의 삶이 가능해집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자기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 “균열” “틈새”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다름”으로 변주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거리의 파토스”로 매듭을 짓습니다. 거리 없이 존중 없습니다. 존중 없으면 적나라해집니다. 적나라해지면 외설이 됩니다. 외설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하여 저자는 “부끄러움”, 그러니까 염치廉恥를 단도직입으로 소환하여 거리와 연대하게 합니다. 신영복 선생에 따르면 인간사회의 척도가 다름 아닌 염치입니다. 염치를 잃은 집단은 도무지 인간사회가 아닙니다. 오늘 여기 대한민국의 문제가 바로 이 몰염치, 아니 파렴치의 문제입니다.
정치는 윤리가 아닙니다. 정치는 전략과 타협이 불가피한 현실거래의 장입니다. 때로는 부도덕한 협잡과 공작이 날뛸 수도 있습니다. 필요악의 경계를 이탈하고 인간의 금도를 넘어선 파렴치가 기조를 이룬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대한민국의 현 집권세력은 태생부터 파렴치를 기조로 하고 있습니다. 조선을 일제에 팔아 부귀영화를 누린 왕족과 서인 노론 집단, 그리고 식민지 부역집단의 카르텔이 저들의 정체성입니다. 지엽적인, 그것도 부풀린 경제 업적 따위로 상쇄될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설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목하 저들이 자행하고 있는 살인과 수탈의 패악은 저들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를 파렴치로, 그러니까 인간 아닌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시급히 거리의 파토스를 복원해야 합니다. 불투과성을 본질로 지닌 인간 영혼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상생의 공동체로서 대한민국이 가야 할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377일째 2014년 4월 16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