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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똑 요렇게 생긴 책을 위한 사마천司馬遷의 헌사, 단소정한短小精悍. 투명 블루에 소략한 디자인. 행간 넓혀 애써 늘여마지 않았음에도 본문은 물경 90쪽. 내장비만 전무全無. 옥에 티, 잦은 대가大家 인용.
투명성이 신뢰를 낳는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믿음이다. 이 때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하필이면 신뢰가 급격하게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단히 높아졌다는 사실이다.(5쪽)
투명성과 신뢰는 본디 상호모순입니다. 투명성은 앎의 영역입니다. 훤히 들여다보여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모름의 영역입니다. 알지 못함에도 믿고 그렇게 여긴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치에 터하면 “투명성이 신뢰를 낳는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고,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 상황은 적실한 것입니다.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드러내라고 요구하는 것이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드러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작 문제는 뒤집힌 맥락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투명성의 요구는 맥락을 뒤집어 놓은 누군가의 기획입니다. 기획자의 투명성은 그 기획의 경계 밖에 있는 불투명성의 투명성입니다. 불투명성의 투명성은 불투명성을 호위하기 위한 설정 투명성입니다. 설정 투명성이기 때문에 절대성을 강제합니다.
절대군주인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를 신하 삼으면서 수탈의 진화는 정점을 찍었습니다. 모순을 전술로 쓸 정도이니 절정고수, 깨달은 악마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 화신이 대한민국에 강림하였습니다. 안의 불투명한 킬킬거림과 밖의 투명한 눈물을 완벽하게 공존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불투명성의 투명성과 국민의 투명성을 일치시키는 신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신공의 기운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매판이 애국으로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독립 혁명가가 테러리스트로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한해에 200번 넘게 통화하는 사이가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로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단원고등학교 아이들 250명은 가난한 주제에 제주도 놀러가다가 단순 교통사고로 죽어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신기방기무인지경.
이 슬프고도 우스운 신기방기무인지경 속에서 가만 생각해봅니다. 이 땅에서 투명성이란 것은 진실을 희화하기 위한 정치적 사투리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