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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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저항해서도 안 되며, 시간의 꽁무니를 따라다녀도 안 된다.·······

·······시간으로 파괴될 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시간으로써 보존되는 것이 아닐까.(165쪽)

·······그는 영웅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일 뿐이다. 그리고 늙어 죽어가는 그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영웅적이다.(170쪽)

 

시간에 관해 물리학이나 철학의 언어를 동원해 낯설게 말하는 것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다지 재미나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시간 속에서 우리가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주의해서 살펴보면 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변화, 우리의 흐름은 두 측면에서 진행됩니다. 하나는 자기 동일성同一性의 측면입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같기만 하지도 않고 다르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변하거나 시간이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시간 속에서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같다와 다르다가 공존하는 전체 진실은 결국 다르다, 그러니까 변한다가 맞습니다. 변화를 허락하는 ‘기다림’이 시간인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자기 단일성單一性의 측면입니다. 나는 나만의 나로 그 경계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나를 나이게 하는 경계는 동시에 남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입구이기도 합니다. 내가 빠져나가 남이 되는 출구이기도 합니다. 나는 나이며 너입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너이거나 시간이 흐름에도 내가 나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시간 속에서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한 것입니다. 나와 네가 공존하는 전체 진실은 결국 내가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다가 맞습니다. 소장消長을 허락하는 ‘기다림’이 시간인 것입니다.

 

‘기다림’으로서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쌓입니다. 쌓이는 시간 속에서 인간이 변화와 소장을 깨달아 상상常相과 아상我相을 깨뜨리는 것이 진리의 구조이며 운동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 시간은 흘려버려집니다. 흘려버려지는 시간의 앞뒤에서 인간의 괴로움이 솟아오릅니다.

 

이제 이틀 남짓 ‘지나면’ 4월 16일입니다. 우리에게 363일의 시간은 쌓인 것일까요, 흘려버려진 것일까요? 아이들을 죽인 우리 못된, 못난 어른들은 변하였습니까, 그대로입니까? 아이들을 죽인 우리 못된, 못난 어른들은 자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알량한 나 자신에서 머무르고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그저 누군가일 뿐”인 우리 하나 하나가 스스로 변하고, 스스로 깨뜨려 이루어내는 각자 자신의 “영웅”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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