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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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각종 표시는 그것을 창조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145쪽)

 

구청장에 당선된 사람의 개인 금고가 당선 직후부터 금괴와 5만 원 권 지폐 다발로 속속 들이차는 장면을 일전 어느 TV 드라마를 통해 보았습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어머니에게 그 부도덕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찍어준 도장 하나로 떼돈 벌게 된 사람들이 감사 표시로 주는 것이니 아무 문제없어요.”

 

차관급 단체장이 이 정도라면 장관급 단체장은 어떻겠습니까. 장관은 어떻겠습니까. 국회의원은 어떻겠습니까. 하물며 대통령은 어떻겠습니까. 드라마 하나로 이 무슨 비약의 사다리냐, 이의를 제기하실 분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말입니다. 정계와 재계는 이렇게 야합해서 떼돈을 벌어들여 지상낙원을 누리며 살고 있고 그 가운데 작은 일부, 그러나 물경 1,850조란 돈을 국외로 빼돌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창조한” 문서·사업·법령·제도 등 국정 전반에 나타나는 “사회의 각종 표시”를 일반 국민은 알지 못합니다. 의문을 제기하면 빨갱이라 욕하는 사람은 본디 그렇다 치고 양식깨나 있는 사람조차 음모론이라고 꾸짖으니 당최 설 자리가 없습니다. 알고 싶어 하지도 못합니다. 무지는 더욱 깊어집니다. 수탈은 더욱 강화됩니다.

 

수탈의 대표적인 “표시” 가운데 하나가 토건입니다. 4대강사업이 그렇고, 주택·도로 건설이 그렇고, 주소 변경 사업이 그렇습니다. 국민의 쾌적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고 명분을 내걸지만 실제로는 오직 그 프로젝트를 만든 자들의 돈벌이 수단일 뿐입니다. 예컨대 MB정권이 주소 변경 사업을 벌였을 때, 저는 대체 무슨 이유로 바꾸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바뀐 주소가 내게 무슨 유익과 편의를 가져다주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큰일을 일으키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 것이고, 누군가는 떼돈을 벌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만은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분명한 것은 아직도 바뀐 새 주소를 잘 모른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저만 이럴까요?

 

수탈의 또 다른 대표적 “표시”는 민영화입니다. 민영화라는 이름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민영화의 이름을 아는 바로 그 국민 거의 모두가 민영화의 실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민영화는 국민의 재산을 개인에게 팔아먹는 것입니다. 얼마에 팔리는지, 받은 돈이 주인인 국민에게 돌아오는지 아는 국민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민영화의 실체를 알지 못하므로 그 뒷이야기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공성이 사라지고 나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러다가 종당 정부까지, 아니 나라까지 팔아먹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리 없습니다. 매판세력이 나라 팔아먹는 골을 불과 100여 년 전에 목도하였고, 35년 동안 식민지를 겪었으며, 이른바 해방 후에도 여전히 그 매판세력 적자들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국민답게 너무나도 극심한 무력무지 상태에 빠져 헤어나질 못합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각종 표시”는 오직 “그것을 창조한” 매판집단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완전한 진실입니다. 그 완전한 진실만이 투명한 것으로 모든 국민에게 선포됩니다. 그밖에는 어떠한 것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것만이 긍정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 도배된 정보망 안에 있어야 안전합니다. 안전의 협박은 국민을 공포·불안과 우울로 몰아넣습니다. 공포·불안과 우울에 갇힌 국민은 옴짝달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늙어감입니다. 357일 째 저 어둡고 차가운 바다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놓아두고 우리 이렇게 속절없이 늙어가도 되는 것일까요? 이렇게 4월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영원히 저주로 남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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