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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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향은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소유의 세계·······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존재는 가진 게 얼마나 되느냐는 소유의 문제를 밝힘으로써 비로소 주어질 뿐이다.·······소유의 사회는 개인의 자율성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소유해야만 한다는 요구의 압력 아래, 개인은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는, 자기만의 전망을 추구하는 인격체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유의 세계는 나날이 자신을 새롭게 기획해보는 아웃사이더를 갈수록 더는 허락하지 않는다.(108-110쪽)

 

아무리 자본에 제압된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돈에 대한 탐욕이 덜해야 할 직업이 있습니다. 법조계, 종교계, 그리고 의료계. 저는 이 세 계통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비교적 소상히 그 내막을 아는 편입니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이야기입니다.

 

법조계는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아는바 권력을 통해 돈을 대놓고 노리는 일등 집단이니 췌론의 여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법의 힘으로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자들이 돈에 눈이 멀면 무슨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가, 이 땅의 검사, 판사, 변호사들이 모든 전형을 보여주었고, 보여주고 있으며, 보여줄 것입니다.

 

종교계는 가장 고결한 언어로 추악함을 가리고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성한 존재를 돈에 팔아넘긴 가장 비루한 집단입니다. 영혼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자들이 돈에 눈이 멀면 무슨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가, 이 땅의 목사, 신부, 승려들이 모든 전형을 보여주었고, 보여주고 있으며, 보여줄 것입니다.

 

의료계는 과학이라는 사이비 진리 담론에 빙의되어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의 하수인 노릇하며 돈에 인격을 파는 첨단 영매 집단입니다. 생명과 건강 문제를 다루는 자들이 돈에 눈이 멀면 무슨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가, 이 땅의 의사들이 모든 전형을 보여주었고, 보여주고 있으며, 보여줄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소유가 늘어갈수록 영혼은 파리해진다.” 이 땅의 부자는 돈 없는 사람을 ‘근본 없는 것’이라 멸시합니다. 그럼 이 땅의 부자에게 ‘영혼 없는 것’이라 하면 존경의 표시겠군요. 근본 없어도 사람이지만 영혼 없는 것은 당최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소유가 사람을 야차로 만들었습니다.

 

야차의 세상은 다르게 사유하는 독립된 주체의 자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돈 앞에서 무색투명한 클론만 일방통행로를 행진할 뿐입니다. 제가 한의사라 말하면 으레 묻습니다. “어느 동네에서 하십니까?” 매출이 얼마나 될지 가늠해보겠다는 말입니다. 돈이 아니면 묻지 않습니다. 오직, 돈만 궁금합니다.

 

생명과 진실엔 아랑곳없이 돈만 궁금한 권력은 세월호‘사건’을 교통‘사고’로 왜곡하고 그에 다른 ‘보상’ 수준을 정합니다. 권력의 주구는 세월호사건 유족한테 퍼줄라고 담뱃값 올렸다 떠들어댑니다. 다른 모든 가치를 먹어치운 돈의 식욕은 언제쯤 멈출까요? 제 주인을 먹어버리고 배가 터진 바로 그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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