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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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모순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죽음은 애초부터 우리 안에 숨어서 애매함과 모순이 생겨날 여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나는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니다.·······부정은 곧 우리 자신의 긍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낮과 밤이 여명 속에서 서로 맞물리듯이.(93-94쪽)

 

언제 어느 때든, 아니 결정적일 때는 반드시 장 아메리 앞에 나타나는 난제가 다름 아닌 모순 또는 이율배반입니다. 현실 삶 속에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므로 그의 언어는 “논리적 모순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식의 방어적 평서문입니다. 그리고 “부정은 곧 우리 자신의 긍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식의 유보적 의문문입니다. 끝내 ‘일지라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자 안에 있는 유럽인에게는 A가 참이면 non A는 반드시 거짓이어야만 합니다. 이것만을 인정하는 이치二値논리를 저들은 표준논리라고 합니다. “나는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니다.”가 평온하게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올 리 없습니다. 장 아메리의 고뇌는 늙어감 자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늙어감에 대한 사유 논리에 이미 고뇌의 DNA가 심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아인은 일찍부터 A가 참일 때 non A도 참인 것이 진리의 기축임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다치多値논리에 따르면 논리적 모순‘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적 모순‘이므로’ 기꺼이, 그러니까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순이 이미 논리 안에 들어와 있으므로 받아들이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본디부터 있었으니 말입니다.

 

장 아메리에게 낮과 밤은 여명 속에서 맞물리지만 아시아인에게 낮과 밤은 여명 속에서만 맞물리는 것이 아닙니다. 한낮에도 밤이 들어와 있습니다. 한밤에도 낮이 들어와 있습니다. 삶과 죽음 또한 그러합니다. 늙어감에 대한 장 아메리의 사유에 아시아인의 이 논리가 흘러들어간다면 과연 어떤 내용을 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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