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화란·······변증법적 격변의 순간이다. 파멸을 막아보려 안간힘을 쓰는 내 몸의 양量은 변형된 나라는 새로운 질質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우리는 인간인가? 그럼 뭐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 한밤중에 치통 때문에 깨어난 A는 격렬한 통증의 집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79쪽)

·······A가·······온전히 자신의 고통으로 몰입하는, 그래서 본격적인 진리가 밝혀지기 시작하는 과정이 열리는 ‘고통의 축제’의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게 아닐까.(85쪽)

 

양의 축적이 질의 변화를 낳는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이렇게 쓰이는 것은 참으로 뜻밖입니다. 문맥상 장 아메리의 결곡함과 자연스럽게 아귀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노화라는 커다란 문맥 안에 통증이 놓이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인간의 본질”, 나아가 “본격적인 진리가 밝혀지기 시작하는 과정이 열리는 ‘고통의 축제’”에 이르면 노화의 문맥이 붕괴되는 느낌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런 난제를 유보한 채 통증에서 출발하여 고통의 축제로 이어지는 문맥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통증은 인간의 본질로서 축제의 성격을 지닌다.”

 

이 문장이 장 아메리의 본의를 전하는 것이라면 실로 경탄할만한 깨달음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육박하며 원효의 실천에 접근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통증은 인간 존재의 숙명임에 틀림없습니다.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통증은 몸과 마음을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원인이며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편하거나 즐겁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편의와 쾌락으로 경도된 문명화로 나아가면서 통증의 숙명성에 체계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급기야 무통문명. 통속종교와 의약자본이 이 무통문명의 쌍끌이입니다.

 

그러나 이 불편하고 성가신 통증은 생명을 열고 이어주는 신호이며 전언입니다. 자연치유의 증거입니다. 만일 이 통증이 편하고 즐거운 것이었다면 인간은 진작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면역 진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하고 성가신 것이야말로 생명에게 주어진 자연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통증에는 분명히 축제의 성격이 내재해 있습니다. 밤이 있어야 꽃이 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기 파괴적 탐욕인 무통의 추구를 멈추어야만 합니다. 불편하고 성가신 통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통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우리에게 부가되는 축복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는 통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그러니까 직시하면 역설적으로 불편함과 성가심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통증만이 인간에게 주는 깨달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깊이의 차원을 획득하게 됩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통증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장 아메리의 통찰이 책 전체를 관통했더라면 혹시 우리가 더 주옥같은 그의 글들을 접하는 행운을 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상념이 한 동안 맴돌았습니다. _()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