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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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건강을 자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머무르지 않는다.······건강한 사람은 세상의 일과 사건에 충실할 따름이다.······건강한 사람은 자기 바깥에 머무른다. 그에게 속한 공간에, 떼려야 뗄 수 없이 자아와 맞물린 세계에 나아가는 게 건강한 사람의 태도다.(69-70쪽)

 

미국정신의학협회가 만드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은 정신의학계에서 경전적인 권위를 지닙니다. 2014년 발표된 그 다섯 번째 판DSM-5에는 20개 범주 아래 300여 가지 정신장애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정교하고 엄격해 보이는 진단 기준을 제시합니다. 일반인이 생각할 때 정교하고 엄격해 보이는 이 진단 기준이 사실은 매우 느슨한 것이어서 질병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합니다. DSM-4 작업을 주도했던 앨런 프랜시스가 최근 그의 저서「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원제: 「Saving Normal」)을 통해 이 문제를 정면 거론하고 나선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내부고발과 다름없는 이런 이야기는 과연 왜 나왔을까요? 미국정신의학협회가 이 DSM를 수익 창출의 도구로 쓰고 있다거나 제약회사 로비가 병의 등재 여부와 진단 기준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회적 부조리 문제는 생략하고 의학적인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의 병은 외부조건과 단절된 고립체에 일어나는 폐쇄적 사건이 아닙니다. 외부조건과 함께 일으키는 상호작용의 결과입니다. 그 외부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일상의 삶입니다. 특히 정신장애는 대부분 일상의 삶 한가운데서 발생하고 치유됩니다. 검사·진단·치료가 일상의 삶과 결합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검사와 진단이 삶의 전체적 맥락과 괴리되면 쉽게 기계적·도식적 판단에 따라 병의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물론 병인 것을 병 아니라고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고 그래서 우리가 문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다시피 한 번 어떤 정신장애 환자라고 규정되면 개인은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도 거기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식 의료 시스템에서는 뇌를 타깃으로 삼는 화학합성약물을 거의 무조건 복용해야 합니다. 대부분 차단제인 이 증상억제제는 근본 치료를 못 함은 물론 수많은 부작용과 생체 진동수 저하를 일으킵니다. 함부로 정신장애 진단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신중을 기하려면 기계적·도식적 검사·진단 너머 삶 전체의 맥락을 살피고 구체적 일상에 대한 관심과 수행 여하를 점검해야 합니다.

 

전혀 다른 문맥처럼 보이지만 장 아메리의 통찰은 이 문제의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건강한가, 아닌가는 “세상의 일과 사건에 충실”한가, 아닌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 테두리 안에 “머무르지” 않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바 거기 머무르며 그 존재의 느낌을 가지는 것이 바로 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제 임상에서 DSM이든 ICD(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든 보조 자료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제 최종 판단과 결단은 상담을 청하신 분과 깊이 대화하여 그가 (아무리 멀쩡해 보여도) 현재 자기 자신에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세상의 일과 사건에 성실히 참여할 수 있는가,를 따져서 내립니다. 또한 특별한 예외를 빼고는 상담을 청한 분이 서양의학의 병명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이끕니다. 병명보다 병이 크고, 병보다 사람이 크고, 사람보다 삶이 크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숭고한 에너지가 편재하는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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